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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2018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도 ‘미투’에 응답하라

신예리 중앙일보 JTBC보도제작국장·본지 논설위원


울대도 ‘미투’에 응답하라




신예리

영문87-91

중앙일보 JTBC보도제작국장·본지 논설위원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 한 때 세상의 ‘왕’이었던 이들이 줄줄이 왕좌에서 내쫓기는 걸 보며 드는 생각이다. 오랜 세월 방패막이가 되어줬을 그들의 알량한 힘과 ‘빽’도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참고 참다 터진 ‘미투(#me too) 열풍’은 흡사 광풍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성(性) 갑질’의 악습을 샅샅이 들춰내는 참이다.


앞서 2016년 문단내 성폭력 고발이 있긴 했지만 ‘미투’가 들불처럼 번지게 된 계기는 지난 1월말 서지현 검사의 JTBC 뉴스룸 인터뷰였다. 조직의 명예를 끔찍이 여기는 검찰의 특성상 2차 피해의 역풍이 익히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이름을 밝히는 용기를 낸 거다. 이후 ‘피해자의 익명 고발→가해자의 부인→피해자의 실명 고발→가해자의 시인’이라는 패턴이 숱한 사례에서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피해자를 되려 죄인 취급하는 낡은 인식 탓에 수많은 성 범죄자들이 얼굴 빳빳이 들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고 이 악문 피해자들이 세상과 당당히 맞서며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한 거다.


그 덕에 법조계·문화계를 비롯해 정계·재계·의료계·종교계·언론계까지 어디 하나 무탈한 곳이 없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참담한 심정이 드는 한편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에 들뜨기도 한다.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잘못이 드러나면 지위고하를 떠나 사과하고 책임져야 하는 세상…이른바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세상이 비로소 열리는 건가 싶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평창 겨울올림픽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가 바로 대한체육회장의 막말을 고발한 자원봉사자였다. 그 어떤 특혜와 갑질도 용납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당찬 모습에서 희망의 싹을 볼 수 있었다. 구태에 찌든 기성 세대의 변화를 촉구하는 신선한 채찍질이랄까. “오랜 관행” 운운하는 비겁한 해명 따위 아무 소용 없다는 것, 이 참에 다들 절감하셨을 게다. 하루 빨리 잘못된 습관과 이별하지 않는다면 누구든 한 방에 훅 가는 몰락을 피할 수 없다.


서울대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문제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는 걸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국내 대학 최초로 다양성위원회를 만들어 ‘모교 출신 남성 교수’ 위주의 조직 문화를 혁신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게 변화의 첫걸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대학 문화를 서울대가 앞장서 열어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