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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 2024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저출생 해법, 대만도 한국도 청년에 있다

신예리 JTBC 자문역

저출생 해법, 대만도 한국도 청년에 있다


신예리
영문87-91
JTBC 자문역
본지 논설위원


비싼 집값 적은 월급 판박이
정치권이 청년의 삶 살펴야


치솟는 집값, 제자리인 월급, 곤두박질치는 출산율…. 얼마 전 생애 첫 대만 여행을 갔다가 우리나라와 판박이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됐다. 80대인 부모님을 모시고 떠난 패키지 투어였는데 마침 현지 가이드가 30대의 교포 청년이었다. 일정 내내 그가 무한 반복한 얘기가 “대만은 한국보다 더 먹고 살기 힘들다”였다. 높은 월세와 낮은 급여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그의 말마따나 대만의 최저 시급은 7160원(2023년 기준). 직장인 평균 월급이 200만원에도 못 미친다. “회사에 다녀도 월급이 너무 적다 보니까 대부분 투잡을 뛴다”고 했다. 게다가 대만 집값은 소득에 비해 턱없이 비싸단다. 자기 같은 젊은이들은 집 사는 건 꿈도 못 꾼 채 월세 내기에도 허리가 휜다는 거다. “타이베이 도심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변두리의 7~8평짜리 집에 사는데도 월세를 150만원이나 내요. 시내 가까이에서 살려면 최소한 250만원쯤 들고요.”

월급 받아서 월세 내기도 벅차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남의 일처럼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대만에선 20~44세 남녀 중 미혼인 비율이 각각 63%, 52%에 달한다(2022년말 기준). 이 비율이 갈수록 늘면서 출산율은 덩달아 하락세다. 2017년 1.13명이던 대만의 합계 출산율은 2021년 0.98명까지 떨어졌다. 이같은 저출생이 인재 부족으로 이어져 세계 1위 TSMC를 보유한 반도체 강국의 지위가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그보다 시급한 발등의 불은 바로 안보 위협. 중국이 호시탐탐 대만을 노리는 가운데 군에 입대할 청년 숫자는 점점 줄어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대만 정부도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갖가지 대책이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청년들이 먹고살 만하다고 느끼는 나라를 만들지 못하는 이상 백약이 무효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가 일찌감치 지적했듯 생존 본능은 재생산 본능보다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젊은이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모는 사회 구조를 뜯어고치는 게 유일한 해법일 텐데 정작 그런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0.72명이라는 전대 미문의 출산율 성적표(2023년)가 나온 게 그리 놀랍지도 않다.

최근 실시된 대만 총통 선거에서 MZ 세대의 표심은 각각 독립과 통일을 외친 거대 양당 대신에 민생을 챙기겠다는 민중당으로 향했다. 과연 다가올 4·10 총선에서 우리 청년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진흙탕 싸움으로 바쁜 정치권이 젊은이들의 삶에 관심이 있기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