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8호 2018년 1월] 뉴스 기획

“이원정부제, 제왕적 대통령 견제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

제5회 서울대 국가정책포럼서 개헌 다뤄
제5회 서울대 국가정책포럼

제5회 국가정책포럼 주요 인사들. 왼쪽 다섯째부터 양현아 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호근 모교 사회학과 교수, 성낙인 모교 총장,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홍준형 모교 행정대학원 교수,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년 새해를 맞아 개헌이 본격적인 화두에 오르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가 여론조사회사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 72.3%가 1987년 만든 현행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11명 중 7명이 바람직한 권력구조 개편으로 이원정부제를 선택했는데, 이보다 앞서 지난해 11월 관악캠퍼스 삼익홀에서 열린 제5회 국가정책포럼에서 성낙인 모교 총장 또한 ‘헌법, 민주시민의 생활헌장으로’라는 발표문을 통해 같은 의견을 내놔 눈길을 끈다. 

“이원정부제, 제왕적 대통령 견제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


국민 72.3% 개헌 찬성 6월 성사 여부 촉각
헌법 흠결 고치고 촛불정신 끌어안을 기회


성낙인 총장 기조 발제
현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헌법상 정부형태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미국식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절충형(권력분산형), 이원정부제(반대통령제)로 나눌 수 있다.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정립된 모델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일원화된 집행부의 권력구조와 의회 사이에 두 개의 국민적 정당성의 축이 병존한다. 대통령과 의회가 상호 독자적이라는 점에서 엄격한 권력분립의 모델이다. 대통령제 하에 우리나라가 평화적 정권교체를 거듭했다는 점에서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러시아에선 변칙적 장기집권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의원내각제는 유럽에서 정립된 모델로 집행부의 구조가 국가원수와 수상으로 이원화돼 있지만 집행권은 사실상 수상을 중심으로 한다. 정부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에 정치적 책임을 다할 의무와 함께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메커니즘 또한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와 의회는 그 성립과 존속이 상호 연계돼 있다.

후발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 두 모델 중 하나를 채택해 실행했지만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잦은 정변을 야기시켰으며, 독일·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도 각각 건설적 불신임투표제,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등 절충형 정부형태를 띠고 있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제적 요소와 의원내각제적 요소가 각각 37.5%이상 62.5%이하를 띠며 대통령 직선제와 대정부 불신임권을 특징으로 한다. 성 총장은 “현행헌법의 기본골격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 이원정부제가 가장 현실적인 개헌 방향”이라며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전통적 지위와 권한을 갖지만 일상적인 행정권의 실질적 책임과 권한은 국무총리에게 부여하는 방향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직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할 경우 야기될 수 있는 관권선거 등 문제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5년 단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제왕적 대통령제는 역대 대통령의 임기말 부패 스캔들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으며, 권력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대통령의 절대적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성낙인 모교 총장(가운데)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개헌 방향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나날이 부각되는 개헌 필요성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 이뤄진 개헌은 급작스럽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 시대적 요청인 대통령직선제는 마련했지만, 다른 부분에선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성 총장은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헌법은 21세기적 시대요청인 세계화·지방화·정보화 또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화 측면에서 다문화는 우리사회의 엄연한 현실이어서 국가 최고규범인 헌법이 더 이상 민족주의적 관념을 고집할 수 없게 한다. 또 △중앙집권화된 국가체제로는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국정운용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강화해 각 지역이 고유의 특색을 살리고 국민 참여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정보화는 우리의 일상에 빠르게 스며들었다. 기본권 측면의 알권리·사생활보호 차원뿐 아니라 정보 격차의 해소, 국정운영의 투명성 제고 등은 민주주의의 현실적 구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 더욱 중요하다.

성 총장은 한편 “정부형태에 대통령을 두는 한 헌법은 대통령 유고시 확인절차를 마련하고 권한대행 또는 후임자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세밀하게 규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유고 당시 이를 공식적으로 판단할 기관이 없어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소집하고 이를 통해 대통령의 유고를 확인하는 등 혼란을 겪은 바 있다. 그는 또 대통령 임기만료에 따른 후임자선거와 대통령 유고에 따른 후임자선거 규정이 어긋나는 데 따른 문제점도 꼽았다. 예컨대 대통령 선거기간 중 유력 후보가 사망할 경우를 대비한 규정이 없다. 성 총장은 “1956년, 1960년 대선 때 민주당의 신익희·조병옥 후보가 사망함으로써 선거가 변질된 실례가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명시적 규정이 없다는 것은 중대한 헌법적 공백”이라고 짚었다.

그밖에 성 총장은 “그간의 개헌은 주로 권력구조에 관한 내용이 주류를 이뤄 국민 기본권에 관한 논의는 다소 소외돼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헌법상 기본권 특히 자유권을 단순히 자유 또는 권리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안전까지 포괄하는 형태의 기본권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근 촛불혁명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며 “국민참여재판이 제한적으로 작동되는 측면을 고려할 때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위헌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태 기자


“개헌으로 법이 우리 삶에 살아 숨 쉬게 해야”

양현아·이헌환·홍준형 교수의 토론


왼쪽부터 양현아, 이헌환, 홍준형 교수


성낙인 총장의 발제에 이어 양현아(사회84-88) 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까지 9차례에 걸친 개헌의 특징을 짚었다. 3·4·9차를 제외하면 모두 집권자 또는 쿠데타 세력이 자신의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헌을 오용한 것을 지적하면서 “1987년 민주항쟁의 성과인 현행 헌법은 체제 정합성이 다소 어긋나거나 심지어 실수로 들어가 있는 조문이 있다 하더라도 그저 타협의 산물이라고 말하긴 어렵다”며 9차 개헌의 의의를 강조했다. 또한 2016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촛불혁명이 1987년 민주항쟁과 닿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10차 개헌이 이뤄진다면 9차 개헌의 계승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성 총장의 발표문에 쓰인 ‘시민중심적 개헌’을 거론하면서 “헌법이 우리 삶속에 살아 숨 쉬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혁명 이후 헌법읽기모임·헌법토론모임이 전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며 “헌법에 대한 시민의 이해를 높이고 그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별·성정체성·국적·인종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는 데 법이 기여할 수 있도록 나름의 법조문을 만들어 제시하기도 했다.

두 번째 토론자인 이헌환(법학78-82·한국공법학회 회장)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의 고려요소로서 △기존 헌법에 대한 진지하고 정확한 성찰과 이해 △현실적 개정 요구 △미래지향적 성격 등을 꼽으며, 성 총장의 발제문은 이를 빠짐없이 짚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성 총장이 제시한 이원정부제와 관련해 “대통령직선제가 쉽게 포기될 수 없는 가치임을 감안할 때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협치를 어떻게 제도화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 구성의 전권을 의회에 주고 대통령이 내각을 의결기구화하면 내각의 책임이 강화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정부도 책임감 있게 정책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형(법학75-79) 모교 행정대학원 교수는 개헌의 공론화 과정을 강조했다. “통보식으로 열리는 전국순회 공청회로는 부족하다. 전 국민이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거칠 수 있도록 ‘보텀 업’(bottom up) 캠페인을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서둘러도 지방선거 일정에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인데 이미 시간이 많이 흐른 상황”이라며 염려하기도 했다. 

청중으로 참석한 박한철(법학71-75·모교 법대 초빙교수) 전 헌법재판소장은 “촛불혁명이라고 이름붙이긴 했지만 최고 권력자의 행태에 대한 시정요구였을 뿐 개헌 요구로까지 이어진 건 아니었다”며 “1987년 6월 항쟁 땐 대통령직선제 등 명확한 이슈가 있었던 데 비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와 국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제 문제를 헌법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고민이 중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