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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2024년 6월] 뉴스 본회소식

“저출생 대책 실천 안 하면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게 개헌해야”

김진표 전 국회의장 조찬포럼 강연
 
“저출생 대책 실천 안 하면 대통령도 탄핵할 수 있게 개헌해야”
 
김진표 (법학67-71)
전 국회의장



5년 단임제, 장기 정책엔 걸림돌
주거·보육·교육 3대 혁신 꾀해야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는 5년 단임 대통령제가 낳은 대표적인 폐단입니다. 임기 동안 성과를 내기 힘든 장기 정책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기가 꺼려지는 거죠. 4년 중임제나 내각 책임제로 바꾸면 될 것 아니냐, 하시는데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1987년 헌법은 여러 독재 정권을 겪었던 불행한 역사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고치기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국회의원 300명 중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으려면 국민 90%는 동의해야 가능할 겁니다. 저를 포함해 역대 국회의장이 노력했지만, 개헌 찬성 여론은 10년 동안 늘 65% 선에 그쳤어요. 저출생 문제만을 대상으로 한 개헌을 저는 주장합니다.”

본회가 6월 13일 서울 플라자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조찬포럼을 개최했다. 동문 12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소멸 위기의 대한민국 국회가 제안하는 인구문제 해법’을 주제로 연단에 섰다. 김 동문은 긴 시간 폭넓게 국정을 돌봤던 원로답게 광범위하고 인상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여태 나온 개헌 논의는 모두 권력 배분에 관한 것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어떻게 질서 있게 국회로 넘기느냐 하는 전문가들의 제안이 주목받았죠. 학자들은 내각 책임제를 훨씬 선호하지만, 여론조사 해보면 국민 80~90%는 반대합니다. ‘헌법이 잘못돼서 문제냐, 운영을 잘해야지’ 하는 거죠. 국회의원 못 믿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정치가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기 전까진 권력 배분에 관한 개헌은 포기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놔두고, 저출생 대책을 아주 구체적으로 헌법에 명시해 안 지키면 정치적 책임뿐 아니라 탄핵도 할 수 있게, 누가 대통령이 돼도 지킬 수밖에 없게 하자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김 동문은 장기적 저출생 대책으로 첫째, 보육 환경 혁신을 꼽았다. 어린이집의 경우, 원장 입장에선 여러 명목으로 찔끔찔끔 주는 지원금 갖고는 수익을 내기 어렵다. 때문에 교사 인건비를 줄이려 드는데, 이는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처우 악화와 교사의 질 저하를 초래한다. 보육학과 교육학을 공부한 유치원 교사와 동일한 수준을 갖추도록 연수를 시키고 시험을 보게 하자는 게 김 동문의 주장. 보육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균질화하고 어린이집 교사 인건비를 국가가 전액 지급함으로써 안심하고 아이 맡길 수 있는 시설을 확대,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육 시설 확충보다 더 중요한 건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근무 환경 조성입니다. 제도를 갖춰도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빠는 물론 엄마도 휴직하기 힘들어요. 제 딸과 사위, 아들과 며느리도 맞벌이 부부인데 치열한 경쟁문화 때문에 출산휴가 3개월 지나니까 악착같이 출근하더라고요.”

김 동문은 일본의 ‘이토추상사’를 예로 들어 가정 친화형 완전 탄력근무제가 출산율뿐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도 높였다고 말했다. 2012년 일본 합계출산율이 1.41명일 때 이토추상사 직원의 합계출산율은 0.6명이었다.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영위하다 보니 사무실 건물을 24시간 열어두고 교대 근무했던 것. 충격을 받은 경영진은 업무 환경을 대대적으로 바꿔, 저녁 8시면 무조건 사무실을 비우게 하고 직원 희망에 따라 시간제 근무나 재택근무를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2021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3명일 때 이토추상사 직원의 합계출산율은 1.97명으로 급증했고, 생산성 또한 5배 늘었다.

“아이 둘 키우려면 평균 월급 절반이 학원비로 나가는 실정입니다. 가계 수입이 줄면 당연히 아이 낳아 키울 여건이 나빠지죠. 사교육비 절감 대책이 곧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이 됩니다. 저는 AI 도입을 통한 공교육 혁신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년부터 수학·영어·중국어 3과목을 AI 교과서로 가르치는데요. 컴퓨터가 학생들에게 수준별 학습자료를 제공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개인 맞춤형 피드백을 해줍니다. AI를 매개로 한 학생과 교사의 질문 답변은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외부로 유출될 수 없어요. 사교육이 침해할 수 없는 공교육만의 영역이 생기는 거죠. AI 교과서가 효과를 발휘하면 사교육비 지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겁니다. 빠르게 전 과목으로 확대해야죠.”



저출생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대책은 공공임대주택 확대를 통한 주거 혁신이다. ‘주거 문제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원칙 아래 분양주택 공급 중심에서 공공임대주택 공급정책으로 전환하자는 것. 김 동문은 현재 공공임대주택 비중이 8.4%에 불과할 뿐 아니라 그중 61%는 13평 이하의 비선호주택이라며 25평 이상 소위 ‘국민 평수’ 주택을 20%까지만 높여도 지금처럼 집값이 폭등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좋은 지역에 임대주택 단지를 조성함으로써 부정적 인식을 탈피, ‘중산층도 사는 임대주택’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2차 세계대전 후 신생 독립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 문턱까지 성장한 국가입니다. 좁은 국토에 자원도 마땅치 않은 나라에서 이런 성과를 낸 건 오로지 인적자원, 오늘보단 내일이 낫고 나보다는 내 자식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성장 욕구와 교육열 때문이죠. 그런데 그 인적자원이 줄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녀들 MZ세대가 결혼을 계속 미루고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해요. 절대 다수의 젊은이가 결혼하고 애 낳는 게 내 인생의 성공과 행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거꾸로 돌리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나라가 다 책임져주는데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으면 저만 손해라고 느끼게 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젊은이들이 생각을 바꾸는 데 우리가 함께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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