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7호 2017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빵 한 개와 칼 한 자루

강경희 조선경제아이 취재본부장·본지 논설위원

빵 한 개와 칼 한 자루



강경희(외교84-88) 조선경제아이 취재본부장·본지 논설위원



얼마전, 알고 지내던 사회활동가가 책 한 권을 보내왔다. ‘빵 한 개와 칼 한 자루’라는 제목의 시집이었다. 빵과 칼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 때문인지, 제목만 봐서는 어떤 감성의 시집인지가 선뜻 떠오르질 않아 책을 집어들자마자 내리읽었다. 책 제목은 미얀마의 시각장애 시인 미얏쭈에잉이 쓴 다섯 편의 시 가운데 하나에서 따온 것이었다.

‘친구야! 너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날카로운 칼 한 자루가 될 수도 있어.

그게 아니라면 설탕 한 컵이나 꿀 한 병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달콤한 즙이 말라버린 사탕수수 한 대를 빨고 있는 것만 같아 친구여.

친구야! 빵 한 조각이랑 반찬을 위해 빚을 져야 했던 내 눈물들은 바닷물처럼 엄청나게 불어났지. 대접하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내주고 싶지 않는 곳에서 구부린 채 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나날들을 정말 힘들게 견뎌왔어.

잔인함이 나를 억누르고 어려움이 나를 내려치니까 힘든 나의 인생에는 아름다움은 없고 상처만 가득하니 너의 시선으로는 차마 볼 수가 없을 거야 친구여.

친구야! 너도 가고 있고 나도 가고 있어. 우리가 가고 있는 여정에서 나눠줄 선행을 힘을 합쳐 베풀면서 우리가 가야 할 미래의 그곳에 이르도록 앞을 향해 나아가자 친구여.’

시집은 한국과 미얀마의 장애시인들이 쓴 시 37편을 공동으로 엮어낸 것이었다. 시 한 편 한 편에서 그들의 지난한 삶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이 먹먹했다.

연말에는 누구든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나이에서 각기 다른 소회가 들 것이다. 꽃길만 걷는 인생도 없다. 우리 모두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산다. 그럼에도 사회 곳곳에서 남다른 성취를 이룬 선후배 관악인들은 꽤 근사하고 역동적인 2018년의 포부를 세우면서 연말을 보낼 것이다.

2017년이 저물어가는 이 순간, 멀리 미얀마에서 날아든 시각장애 시인의 시 한편을 동문들과 공유하면서 보내고 싶다. 언어의 유려함은 부족할지 몰라도 이들의 시 구절 구절에는 어느 한 모퉁이에서 처연하게 들려오는 작은 새의 절규 같은 애잔함과 간절함이 깃들어 있다. 다른 사회 구성원들보다 더 날렵한 칼 한 자루, 더 풍성한 빵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재능과 기회를 부여받고 살아온 관악인들이야말로 이런 울림에 더 자주, 더 고개 숙여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겨울 바람이 매섭다. 날선 삭풍보다도 더 추운 인생들이 우리 사회에, 그리고 이 세상 곳곳에 아직 너무 많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