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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2017년 10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 운전석의 책임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본지 논설위원



이계성 (정치77-81) 한국일보 논설위원실장 본지 논설위원


모교 서울대학교가 안팎으로 시련과 도전에 처해 있다. 안으로는 시흥캠퍼스 조성 문제를 놓고 학교당국과 학생들 간 갈등이 이어지고, 밖으로는 서울대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폐지 또는 위상 변경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대의 운전석에 앉아 안팎의 위기를 주도적으로 헤쳐나갈 주체는 누구인가.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서울대도 대학본부와 교수, 학생이라는 3주체를 축으로 운영된다. 교육당국의 입김과 일반 여론의 지원 혹은 압력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3축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자율적으로 대학을 이끌어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이 3축이 서울대 운전석의 주인이 되는 게 당연하고, 3주체가 유기적으로 한 몸체를 이뤄야 서울대를 잘 운전해 나갈 수 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 모교가 겪고 있는 위기는 이 3축 간 불통과 갈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21세기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은 대학으로 하여금 더 이상 학문을 탐구하는 상아탑으로서의 전통적 기능에만 머물 수 없게 한다. 시흥캠퍼스는 그런 시대 변화에 부응하려는 모교의 새 비전일 것이다. 성낙인 총장이 지난 8월 발표한 ‘시흥캠퍼스 협의회 종료에 즈음한 담화문’에는 그 기본 방향이 담겨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미래기술 스마트 캠퍼스’ ‘인류문명과 사회발전을 탐구하는 문화·사회·예술 융복합 캠퍼스’ ‘통일을 대비하는 통일·평화·인권 캠퍼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자본의 논리에 의한 대학의 상업화’라는 이유로 시흥캠퍼스 건립에 반대해왔다. 정교한 재정·운영 계획 없이 지자체와 대기업에 의존해 사업이 추진돼온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대학본부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마련한 대학 발전 비전을 자본의 논리와 같은 단선적 사고로 재단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점거 등 물리력을 동원해 가로막을 일은 더욱 아니다. 유한한 시간 학교에 머무는 특정 시기의 학생들이 장기적인 대학 비전을 결정하는 과정에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행사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공간에서 장기간의 점거농성과 물리적 충돌, 고발과 중징계 사태가 벌어지도록 대화와 소통,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근본주의적인 독선과 아집, 일방통행의 결과다.


서울대의 운전석에 앉은 주체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10년 넘게 끌어온 시흥캠퍼스 갈등을 지혜롭게 정리하고 세계 일류대학으로 도약해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게 서울대 폐지론 같은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