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74호 2017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강대원 박사를 아십니까

정상욱 미국 럿거스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강대원 박사를 아십니까



정상욱(수학75-82) 미국 럿거스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한국인, 다음 영웅을 기다려라’ 노벨상을 수상한 이론 물리학자이며, 동시에 카이스트의 총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러플린이 떠나면서 남겼던 저서의 제목이다. 그가 저명한 물리학자에서 이 머나먼 타국 땅의 대학교 총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갖게 된 이유에는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열망도 있었다. 스스로도 그러한 기대를 잘 알고 개혁적인 변화를 시도했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미완에 그친 그의 노력은 이 땅에 노벨상 수상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리누스 토발즈를 만나서 발견했다는 둘 사이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누스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운영체제인 리눅스를 개발한 장본인으로, 인터넷 저변 확대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만일 소프트웨어계에 노벨상이 있다면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을 정도다. 러플린이 말한 공통점이란 이런 것이다. 리누스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해 수익을 올리는 전형적인 틀이 아닌 오픈소스 개발자였다는 점과 하필 러플린 자신도 연구 과제의 승인이 지연되어 굳이 성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던 시기에 연구소 한 켠의 허름한 트레일러에서 시작한 연구가 노벨상을 안겨줬다는 점이다. 소프트웨어 판매를 통해 이익을 내는 개발자들의 생태계와 연구 과제에 따르는 연구 결과물을 선보여야 하는 과학자의 그것에서 벗어난 자생적인 업적들이 인류에 공헌한 셈이다.


다른 노벨상 수상의 이야기들을 보면 자생적이라는 속성이 공통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연의 켜켜이 쌓여 있는 층상 구조를 보고 테이프를 이용해 떼어내다 보면 정말 얇게 만들 수 있겠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그래핀의 연구를 촉발한 맨체스터 대학의 노벨상 수상도 유명하다. 우리가 찾는 영웅 이야기도 예측 가능한 지원 시스템으로 배양액에서 길러지기보다는 다양성과 창의성이라는 토양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즉 영웅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훌륭한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엘리트 교육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 시스템만으로 지극히 창조적인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학을 자퇴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노벨상 수상자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평가 받는 인물들은 대부분 기존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 반대 예로 굳이 영웅을 찾고자 하는 조바심이 만들어 낸 삐뚤어진 사례도 많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벨 연구소에서 있었던 헨드릭 숀의 논문 조작 사건이 대표적이다. 저명한 학술지인 사이언스와 네이처의 15편의 논문을 포함해 그가 게재한 논문들이 대부분 조작으로 밝혀진 것이다. 사실은 그의 조작에는 당시 기울던 자금 사정을 타개 하고자 유명세를 얻을 연구를 독려했던 연구소 내의 분위기가 한 몫을 한 측면이 있다. 영웅을 만들고자 하는 조바심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영웅을 만들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바로 이미 갖고 있는 영웅을 대접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훌륭한 일을 해냈던 인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알려지지 못한 사례가 많다. 1등만 기억하고 대접받는 사회는 나머지 모두를 패자로 기억하고 결국에는 다양성과 창조성이 사라진 척박한 황무지가 되기 쉽다. 진정한 우리의 영웅들을 찾아 그들에게 합당한 명예를 안겨 주는 사회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앞으로 나타날 영웅들을 싹 틔울 훌륭한 토양이 제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여기에 우리의 영웅들 중 한 명을 주목하고자 한다. 주머니에 작은 컴퓨터를 한 대씩 갖고 다니는 시대에 사는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이다. 현재의 정보화 시대로의 변화가 반도체 산업의 발전에 힘입어 이루어졌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그 발전을 촉발한 금속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가 한국인 과학자에 의해 처음 선보였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바로 강대원 박사의 이야기이다.


1955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박사를 마친 그는 벨 연구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컴퓨터라는 개념조차 요원했던 당시에 강대원 박사와 마틴 아탈라 박사가 함께 실현했던 소자가 바로 최초의 MOSFET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개념으로만 제시되어 많은 학자들이 매달렸던 학계의 중요한 숙제를 그는 금속산화물을 얇게 입혀 절연체로 사용한 덕분에 반도체 표면에 존재하는 표면준위를 극복해 처음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더욱이 그는 당시 서술에서 얇은 산화막을 입히는 공정의 편의로 인해서 집적회로의 구성이 쉬워질 것임을 예측했었다. 수 년이 흐른 뒤에 실제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이 나오면서 그의 아이디어는 빛을 보게 된다. 그 후 이어진 컴퓨터의 등장과 반도체 산업의 팽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동 게이트 구조도 처음으로 구현하였는데, 지금의 우리 경제의 한 축인 메모리 반도체가 그로부터 발전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벨 연구소를 은퇴한 후 NEC 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역임하던 중 1992년 명을 달리하기 직전까지도 학회에 참여하신 열정적인 연구자셨다. 그런 그의 업적을 기려 미국에서는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도 올렸으며 스튜어트 발랜타인 상 등을 수여하기도 했다. 반면에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강대원 박사뿐만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이미 있는 영웅들을 잘 찾아내 대우를 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 다음 영웅이 찾아올 거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