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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2021년 7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코로나 팬데믹, 한국 주류 국가로 도약할 기회

세계사 격변 뒤 새 지도국 등장 K-방역 통해 한국 한 단계 발전

동문칼럼

코로나 팬데믹, 한국 주류 국가로 도약할 기회



정상욱

수학75-82
미국 럿거스대 물리학과 석좌교수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유례없는 격랑의 변화를 매일 접하고 있는 요즘, 문득 두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하나는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았던 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킨 두 개의 핵폭탄이고, 다른 하나는 벨 연구소에서 마주한 적 있는 1947년 개발된 트랜지스터 전시물이다.

20세기 들어 나타난 수많은 기술 중에서도 이 두 가지가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핵기술의 등장 이후 강대국 간 핵무기 및 투발 수단 개발 경쟁은 수십 년 동안 지속됐고, 반도체의 발전은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개발을 통해 정보화 시대로의 진입을 이끌어 인류의 삶과 생각을 가상 세계로까지 확장시켰다. 20세기를 혁신했던 다양한 기술들의 근간에는 다양한 물리학의 원리가 숨어 있어, 가히 물리학의 세기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렇듯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에는 공통된 흐름이 있다. 바로 전쟁이나 재앙 직후의 사회가 탄생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핵폭탄은 전쟁의 승리를 목적으로 개발한 기술의 산물이며, 트랜지스터 또한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각종 과학 및 공학의 우위를 점하기 위한 목적으로 태어났다.

사실 역사에선 종종 비슷한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0%가량을 휩쓰는 치명상을 입혔는데, 그 영향으로 평가한다면 세계 0차 대전으로 비유해 볼 만하다. 뉴턴이 바로 그 흑사병을 피해 런던을 떠나 있던 시기, 고전역학을 새롭게 정립하며 천체의 움직임을 아우르는 법칙을 발견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성과 철학적 자각을 배경으로 로마 가톨릭과 중세 봉건제가 약화했고 이후 등장하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산업혁명의 배경이 됐다. 위기를 계기로 자각한 인류의 이성적 사고와 이에 따른 확장된 세계관은 수 세기에 걸친 세계 질서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인류에 상처를 남겼던 변화 이후 새로운 과학의 발전과 그로 인한 인류의 자각 및 변화의 시기가 반동처럼 뒤따른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반동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시점에 지배 세력의 교체도 함께 이뤄졌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가 세계 질서를 재편하자 산업 혁명을 이끌던 영국이 급부상한 것처럼 말이다.

세계사 격변 뒤 새 지도국 등장
K-방역 통해 한국 한 단계 발전

세계 대전 이후엔 핵폭탄 같은 군사 기술부터 트랜지스터에 뒤따른 반도체 기술의 발전을 이끌었던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로 평가되는 시대를 구가했다. 그 과정에서 주도 세력이나 그 인접 세력을 중심으로 역사는 쓰여 왔고, 이 흐름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세력은 안타까운 운명을 맞닥뜨려 왔다. 제국주의 시대와 태평양전쟁과 남북전쟁을 거친 대한민국은 중심 세력에서 소외된 채 근현대사를 지나며 수많은 고초를 치렀음을 상기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은 과거 세계 대전에 비견될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다. 전 세계적으로 400만여 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방역을 위한 봉쇄 조치 등은 전 인류의 일상에 상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초래했다.

문제는 이후에 뒤따를 반동의 흐름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흐름을 주도할 것인지, 아니 적어도 뒤처지거나 소외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이 새로운 주도 세력이 등장하는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새로운 흐름은 이미 시작됐다. 하나는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 및 분배의 과정에서 보여준 세계 각국의 기민한 움직임과 방역을 통한 안보라는 흐름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비대면 수업과 넷플릭스·디즈니+와 같은 온라인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 메타버스로의 인간인지의 확장 등이다.

이 두 흐름을 살펴보면 지금까지의 과학기술이 늘어나는 인구를 지탱하는 데 중점을 두었던 데 반해 이제는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자각이 엿보인다. 세계적 감염병의 재앙을 새로운 의료기술의 등장을 통해 해결하고, 제한된 물리적 사회활동을 가상세계를 통해 보충해 가며 극복하는 역사를 목격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그 어두운 터널에 끝이 보인다. 진정한 치유까진 아직 시간이 필요하지만. 코로나 이후 시대엔 의료 및 보건 안보라는 개념이 강조되고 혼란 속에 등장한 가상세계의 질서가 잡혀갈 것이다.

70년 전에는 분명 역사 흐름의 변방에서 표류하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주류에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을 새삼 K-방역과 각종 한류 콘텐츠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고무적인 사실이지만,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와 ‘새롭게 바뀔 흐름을 어떻게 잘 읽어내고 얼마나 잘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은 여전히 안갯속에 있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단순히 코로나와의 전쟁을 마치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이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요구를 읽어내고 능동적으로 대처한다면 주류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