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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2017년 7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자랑은 갑옷을 벗을 때 하라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본지 논설위원


자랑은 갑옷을 벗을 때 하라




전영기(정치80-84)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본지 논설위원


“참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 자랑하지 않는다. 갑옷을 벗을 때 자랑한다.”


얼마 전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왕들 얘기를 읽으면서 발견한 구절인데 요즘 집권세력에게 들려주고 싶다. 국정 지지율이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차가워지는 게 대중의 생리다. 국정의 운전석에 올랐으면 승객의 환호나 비난에 일희일비하지 말 일이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데에만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한다.


길지 않은 헌정사에서 임기를 못 채우고 내려 온 대통령이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전직 대통령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하나씩 거쳐가며 직에서 파면됐으니 그 뒤를 이어 받은 문재인 대통령도 마냥 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멘토격인 이해찬 전 총리는 어떤 토크 쇼에서 “선거 초반쯤 이 선거는 끝났다. 선거 여러 번 치러봤지만 아마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앞으로 당선된 우리 당 후보들은 절대로 탄핵당할 일이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정권을 손쉽게 잡았다는 솔직한 토로이자 전임자처럼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일 것이다.


지지자들끼리 모여 승리를 만끽하는 자리에서 얘기였지만 문재인 정권은 아직 갑옷을 벗지 않았다. 집권(執權)의 갑옷을 용권(用權, 권력 사용)의 갑옷으로 갈아입었을 뿐이다. 그러니 자랑은 적게 할 일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제대로 쓰는 데 고뇌와 정성과 겸손을 바쳐야 할 때다. 자랑은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해도 늦지 않다.


지난 세월의 권력사를 돌아보면 초기의 환호는 오만한 인사에서 한풀 꺾이고 무리한 정책을 억지 집행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진다. 짧은 세월에 너무 많은 숙제를 하려다 아무것도 못하기 일쑤다. 그러다 집권세력 내부에 부패와 불법사건이 터지면서 한꺼번에 무너지곤 했다. 1987년 이래 어느 정권도 예외 없이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자기의 용권(권력 사용)에 대해 원천적으로 국민 재신임을 받을 수 없는 권력자의 불임성(不姙性) 즉, 단임 권력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했으니 거기서 불임적 단임제만 사라져도 상황은 크게 개선되리라고 본다.


다만 개헌과 별도로 집권세력은 역대의 권력 실패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감행해야 한다. 5년 내에 무언가 역사적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국정 자동차를 궤도에서 이탈시킬 것이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똑같이 섬기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5월 10일 취임사야말로 그들이 운전대에서 무사히 내려와 박수를 받을 실질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실패가 나라의 실패로 이어지는 모습을 우리는 박근혜 전임으로부터 무섭도록 관찰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이유도 나라의 성공을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