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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023년 10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자하연(紫霞淵) 단상

이우탁 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자하연(紫霞淵) 단상


이우탁

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우연히 페이스북을 보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입학 40주년 홈커밍데이를 맞아 예전 과사무실이 있던 5동 근처에서 단체 사진을 찍은 한 해 선배들의 모습이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올려놓았는데, 인문대 1, 2동 옆에 있는 자하연에서 찍은 무리 사진도 있었다. 친절하게도 어디서 찾았는지 학창시절 찍은 사진도 몇 장 올려놓았다.

한동안 과거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40년의 세월이 빚어낸 선배들의 변화를 실감했다. 묘한 여운이 깃들었다. 80년대 캠퍼스는 시대상황으로 인해 지독한 사연들이 많았다. 사진을 올린 선배나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나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자하연 사진을 보면서 상념에 젖어들었다. 그때 자하연은 우리들의 안식처였다. 최루탄이 난무하던 아크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들은 해가 질 무렵 조용히 자하연을 찾곤 했다. ‘자줏빛 노을이 내리는 연못이라는 뜻을 지닌 자하연(紫霞淵) 가에 멍하니 앉아 수면 위를 고요히 응시하곤 했다.

지난 봄 지인의 아들 결혼식이 있어 관악을 찾은 김에 자하연에 들렀더니 예전에 있던 오작교가 철거돼 있었다. 연인끼리 이 다리를 건너면 1년 안에 헤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속설이 있던 오작교였는데. 오작교에서도 많은 추억이 있었다. 그때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요즘 후배들도 자하연을 자주 찾을 것이다. 관악 캠퍼스의 포토존으로 유명하다고 대학신문에서 소개한 기사를 본 적도 있는데,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들을 쌓길 바란다.

문득 얼마 전 동창회장님이 식사 자리에서 재밌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 올봄 신입생 입학식에서 축사를 했다고 하는데, ‘어렵게 공부해서 관악에 들어왔는데, 이제부터는 주어진 시간의 3분의 1만 공부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멋지고 훌륭한 친구들 많이 사귀고, 또 나머지 3분의 1은 이성을 사귀어보라는 내용이었다. 40년 전 우리들도 그렇게 보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원에 다니는 큰딸이 요즘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모양이다. 짐짓 모른 체 하고 있지만 얼굴에 드리운 수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기회가 되면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주어진 시간의 3분의 1만 고민하고 나머지 시간은 친구들하고 즐겁게, 의미있게 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어느덧 가을의 정취가 완연해졌다. 마침 1028일 역사학부 통합을 기념해 동문 가족들도 참여할 수 있는 홈커밍데이를 한다는 연락이 왔다. 딸과 함께 모처럼 자하연에 한번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