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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023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이미자·김혜자·골때녀가 일깨워준 정신


이미자·김혜자·골때녀가 일깨워준 정신



방문신

경영82-89
SBS 보도·대외협력 부사장
본지 논설위원


올해 82세의 가수 이미자는 ‘마지막 무대’라는 마음가짐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특히 가수생활 50년째를 넘기면서부터는 ‘이 무대가 은퇴무대’라는 비장함으로 혼신을 다했다고 한다. 반대로 배우 김혜자는 항상 ‘오늘이 첫 무대’인 것처럼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신인의 초심, 그 떨림과 설렘으로 작품과 마주했다고 한다. 영화 ‘마더’를 찍을 때 봉준호 감독에게 “나를 많이 괴롭히고 나를 극단으로 밀어붙이세요”라고 요청했고 “그런 절실함이 오늘의 김혜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마지막 무대라는 마음가짐과 신인의 첫 무대라는 마음가짐. 그 본질은 똑같다. 온몸을 던진 땀과 눈물이다.

요즘은 그 땀과 눈물의 감동을 SBS 예능프로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에서 본다. 이 프로의 출연자들은 정말 기를 쓰고 뛴다. 여성 연예인 하면 연상되는 뽀샵 얼굴이 아닌 민낯으로, 예뻐 보이려 애쓰는 연출된 연기가 아닌 축구와 승부에 진심을 담아 이를 악물고 뛴다. 설렁설렁함이 아닌 간절함, 겉멋이 아닌 진정성이 살아 움직인다. 편안함에 안주하는 게 아닌 나를 더 단련시켜 앞으로 나가겠다는 독기마저 느껴진다. 웃음, 힐링, 편안함이 아닌 혹독함, 절박함, 냉정함이 지배하는 프로다. 그런데도 재미가 있다. 감동이 있다.

예능 프로는 재미가 최우선이지만 뜯어 보면 나름의 시대정신이 녹아 있다. 사회 전체가 빡세게 돌아가는 시대에는 쉼, 힐링 같은 예능이 인기를 끈다. 그런 시대에 뜬 것이 SBS 기준으로 보면 ‘힐링캠프’, ‘패밀리가 떴다’ 같은 프로그램이다. 휴식의 결핍, 재충전에 대한 갈망이 그런 프로를 인기상품으로 만든 것이다.

요즘은 어떠한가? 워라밸, ‘이걸요? 제가요? 왜요?’가 흐름이 된 시대 아닌가? 그러다 보니 시대정신은 결핍을 찾아 반대로 움직인다. 절박함, 절실함, 간절함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골때녀는 그런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시대정신의 새 풍항계가 된 셈이다. 해외 여행성 예능 프로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풍광 멋진 곳의 여유를 즐기는 프로가 인기였던 데 반해 지금은 현지에서 개고생하는 프로가 주목받고 있다.

모두 다 같은 맥락이다. 사회가 개인주의, 순간의 즐거움, 좋은 말 대잔치의 책임지지 않는 편안함에 더 익숙해 갈수록 대중들은 혼신의 땀과 눈물, 진짜 실력에 더 목말라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자, 김혜자, 골때녀가 새삼스레 일깨워 준 시대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