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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023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천원의 식사가 따뜻한 한 끼가 되려면

하임숙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 본지 논설위원
천원의 식사가 따뜻한 한 끼가 되려면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 
본지 논설위원

 
먹는 문제는 언제나 삶의 핵심이다. ‘따뜻한 한 끼’는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하루를 뚜벅이며 걸어가게 하는 동력이고, ‘밥벌이’는 굴욕을 감수하고라도 생존해야 하는 직장인의 애환과 동의어다.

최근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는 ‘천원의 식사’는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사회적 현상의 축약판이다.

2012년 순천향대에서 시작돼 올해 41개 대학으로 확산된 천원의 식사는 대학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본교는 재학생들에게 학생회관에서 2015년부터 아침식사를 제공했고, 2016년부터는 저녁으로 확대한 뒤 2018년부터는 점심까지 천원의 식사를 운영하고 있다. 외부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식사할 경우 최소 5000원은 될 것이니 큰 혜택이다. 중복 이용자를 포함해 연 평균 이용자만 작년 기준 28만명이다.

하지만 일부 지방 대학은 ‘천원의 아침밥’만, 그것도 매일 70~100명에게만 제공한다. 연 평균 이용자가 많아야 3만여 명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아침밥을 먹으려 학생들은 아침마다 ‘오픈런’을 벌이고 있다. 본교는 찬 4가지에 먹을 만한 음식을 제공하지만 컵라면에 삼각 김밥 정도 내놓는 대학도 있다.

대학 간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학교 재정과 기부금이다. 애초에 본교를 포함한 일부 대학이 자발적으로 학생들 복지를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시작한 사업이 정부가 예산을 태우고, 정치권이 뛰어들면서 울며겨자먹기로 동참한 대학들도 많다.

식재료에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천원의 식사 원가는 최소 3000원이 넘는다. 특히 최근 밥상물가가 급등했고, 최저임금이 1만원 코앞까지 오르면서 원가 부담은 더 커졌다. 정부가 한 끼당 천원을 ‘매칭 지원’한다 해도 적자를 지속 감수할 여력이 되는 대학은 많지 않다.

애초에 농림축산식품부가 이 사업에 뛰어든 건 쌀 소비 확대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 표가 절실한 정치권이 무차별적으로 지원 확대에 나서면서 세금 부담과 대학 재정난이 커지는 구조가 됐다. 정부는 천원 식사 지원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 하고 야당은 모든 대학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먹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이는 전제가 있다. 안정적 재생산이 가능해야 하고, 이로 인해 다른 먹고 사는 문제에 해악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국가 채무가 1000조원을 돌파한 지금, 학자금 무이자 대출법, ‘전국민 1000만원 기본대출’같은 정치권의 비이성적 포퓰리즘을 보면 천원의 식사가 그리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