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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2017년 6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군자삼락을 다시 생각한다

오종남(법대71-75)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전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군자삼락을 다시 생각한다



오종남(법대71-75)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전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필자는 지난해 고등학교의 총동

문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등 떠밀리다시피 맡고 보니 회장으로서 과연 무슨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우선 총동문회 회칙을 찾아 제2조(목적) 조항을 읽어 보았다. 대부분의 동문회 회칙이 거의 비슷하겠지만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모교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친목을 도모하는 일이야 종전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만 모교 발전에 조금이라도 남다르게 기여하려면 무슨 사업을 벌일까 고민 끝에 흔한 ‘장학금 배가 운동’ 같은 일 대신에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해서 필자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 경험을 거울삼아 ‘멘토-멘티 사업’, 일명 ‘형-아우 맺어주기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도청 소재지로 진학한 필자는 학교 폭력에 시달려 보기도 했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더구나 아버지께서 일찍 군인으로 전사하신 후 홀어머니의 외아들로 자란 필자는 사춘기 시절 고민이 있더라도 딱히 상담할 형이나 누나가 없어 외로움을 느끼곤 했던 추억이 있다.


언젠가 필자는 고등학교 총동창회 명부를 들여다보다가 필자의 동기 8학급 480명 가운데 5%에 해당하는 25명이 졸업을 하지 못한 준회원임을 발견하였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고, 부모님의 전근으로 다른 학교로 전학 간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또 친구들의 따돌림으로 학업을 포기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와 달리 졸업을 못하는 일은 생기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요즘 학생들 가운데 고민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어 힘들어 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채워주기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은 누구일까? 같은 교정에서 3년을 지내며 사춘기를 겪고 비슷한 고민을 한 고등학교 선배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고심 끝에 총동문회장으로서 모교 발전에 기여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이와 관련된 일을 벌이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앞서 말한 ‘멘토-멘티 사업’은 이렇게 해서 기획된 것이다.


우선 적은 규모로 시작해보기로 하고 상담교사를 통해 고등학생 멘티 후보 30명을 선발했다. 그리고 이들 멘티가 원하는 전공학과와 가까운 학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 1학년 선배 가운데 멘토 후보 30명을 선발하여 이들을 1:1로 맺어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학생 선배는 자신의 공부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기에 많은 시간을 뺏긴다면 이를 보상해줄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50대 이상의 선배 가운데 시니어 멘토를 모집하여 이들에게 대학생-고등학생으로 엮어진 ‘멘토-멘티’와 연결해 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니어 멘토-멘토-멘티’의 3인 1조 ‘형-아우 맺어주기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형과 아우처럼 학업·진로·가정·연애 등 각종 고민을 상담하게 하자는 취지다.


‘형-아우 맺어주기 프로젝트’의 결연식장에서 필자는 강연 대신 가수 리아 킴의 ‘위대한 약속’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노래 가사 중 “위급한 순간에 내 편이 있다는 건 내겐 마음의 위안이고…” 라는 부분이 멘토의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필자는 고등학생들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선배를 연결해주는 이 사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고 있다. 필자는 장학의 의미를 이제는 다시금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우수한 학생을 더 우수한 학생으로 북돋워주는 장학 사업도 물론 보람 있는 일이지만 조금 부족한 학생을 격려해서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맹자(BC 372-289?)의 군자삼락을 다시 생각해본다. 일찍이 맹자는 그의 저서 ‘맹자’ 진심편(盡心篇)에서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 군자삼락을 논했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고(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 남들에게 창피하지 않은 것이 둘째 즐거움이요(仰不愧於天 俯不?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셋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여기서 필자는 영재를 지도자로 기르는 교육도 즐거움이지만 낙오될 수도 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교육 또한 즐거움이요 보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무현 정부 시절 거론되던 서울대 폐지론이 근래 다른 형태로 다시 얘기되고 있다. 사람들은 왜 잊을 만하면 서울대 폐지론의 불씨를 다시 지필까를 생각해본다. 국립 서울대학교는 개인의 영달을 넘어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될 인재를 양성하고자 국가가 설립해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대학이다. 그런 만큼 국민들은 서울대 졸업생들에게 무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일을 해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서울대에 입학한 동문 한 사람 한 사람은 배출한 고등학교 입장에서 보면 내세우고 싶은 자랑스러운 동문이리라. 그런 자랑스러운 선배가 모교에 찾아와 낙오할 수도 있는 고등학생 후배의 멘토가 되겠다고 자청한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작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지만 우선 나 한 사람만이라도 앞장서서 이런 일을 실천에 옮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갖고 조동화 시인의 시 한 수를 떠올린다.


나 하나 꽃 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