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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2017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스무살로 되돌아가고 싶은가요

강경희 조선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스무살로 되돌아가고 싶은가요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을 이렇게 묘사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당장 오늘 점심 때 중국집 가서 자장면 먹을 것이냐, 짬뽕 먹을 것이냐를 결정하는 아주아주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 선택의 점들이 모여 내 삶의 궤적을 이룬다.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면서 내가 선택한 길을 되돌리고 싶어 후회한 적은 없다. 그래도 요즘 나이 먹어가면서 가끔 나 자신한테,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곤 한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의외의 질문이라는 듯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도 있고, 젊은 시절 가지 않은 길을 가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떠냐고? 이렇게 대답한다. “내 앞에 두 갈래 길 말고 전혀 다른 길, 아니 아예 길이 없는 숲으로 들어가보고 싶어.”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와 최적의 조합을 찾아 선택을 내리는 데 꽤 많은 시간과 품을 들이는 성격이다.


30년 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해도 아마 비슷한 선택을 할 게 뻔하다. 그래서 만약 다시 살 수 있다면, 나 아닌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스무 살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래도 길 없는 곳으로 가볼, 나 아닌 나로 살아볼 기회가 주어지게 생겼다. 나뿐만 아니라 인류 대부분이 맞게 된 초유의 시간이다. 평균 수명이 훌쩍 늘어난 고령사회 덕분이다. 은퇴 후 삶이 현역으로 일하던 시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길어졌다. 평생 현역으로 살 수 있는 프리랜서 직업을 가졌거나, 자신이 주인인 회사를 경영하는 분이야 별로 고민이 없겠지만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음에도 어느날 갑자기 사회로부터 은퇴 선고를 받아 퇴장해야 하는 사람들은 크게 상실감을 느끼거나 어떻게 해서든 은퇴를 늦춰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 가보지 않은 길, 전혀 다른 나로 살아볼 수 있는 인생 한판이 선물로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은퇴 후의 삶은 걱정되거나 두려운 시간이 아니고 오히려 낯선 곳으로 여행 떠나기 전날의 설레고 기다려지는 시간처럼 여겨진다. 다만 여기엔 반드시 갖춰야 할 게 있다.


새 인생으로 모험 떠날 체력, 그리고 호기심…. 이게 없으면 다 허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