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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역사의 무게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주간·본지 논설위원


역사의 무게


이용식(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논설주간·본지 논설위원


최근 발간된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사’는 한 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묵직하다. 총동창회와 모교가 공동 출간한 비매품 책자이지만, 그 분량이 본서와 부록을 합쳐 1,450쪽에 달한다. 얼핏 보기엔 모교가 종합대학으로 통합돼 공식 개교한 1946년 이후의 기록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그 때까지의 반세기를 담고 있다. 즉 1895년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교육 조칙(詔勅) 발표와, 그에 따라 법과대학 전신인 법관양성소가 개소된 때로부터 개교 직전까지 단과대학별 전사(前史)다. 그러다보니 희귀한 자료들도 많고, 이태진 편찬위원장의 설명처럼 ‘서울대 유래 천착을 넘어 한국 근현대 고등교육사의 발굴’이라는 취지도 각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뜻깊은 것은 모교의 역사 중 목에 가시처럼 남아 있던 부분을 투명하게 정리하고, 당당히 편입시킨 일이다. 일제 강점기나 원나라 침략기를 한국사에서 떼낼 수 없듯이 모교사의 특정 시기 역시 수치스럽다고 해서 배제할 수는 없다. 이제 모교도 120년 넘는 역사를 국내외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게 됐다. 2009년 당시 임광수 총동창회장의 ‘개교 원년 찾기’ 건의, 2010년 이장무 총장 시절 평의원회의 ‘1895년 개학, 1946년 개교’ 개념 정립을 거쳐 2013년 오연천 총장의 편찬 사업 수용 등을 거쳤으니, 무려 8년이 걸렸다.


세계의 유서 깊은 대학들에 비해 모교의 출발은 결코 초라하지 않다. 하버드대의 경우, 1636년 설립 당시 교명이 ‘뉴 칼리지’였고, 설립 목적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목사 양성이었다. 초기엔 전임 교수도 없이 학생 몇 명이 라틴어 책을 읽고 얘기하는 독서클럽 수준에 불과했다. 공교롭게도 최근 하버드대를 비롯 예일대, 컬럼비아대, 조지타운대, 버지니아대 등 미국 대학들도 노예제와 관련된 아픈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고 반성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스승이다. 이번 ‘반세기사’를 보면, 나라 없던 시기 선배들의 애국과 충정을 읽을 수 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1924년 졸업생들의 경우, 한국인 49명이 별도 앨범을 만들었다. 한국 전도 위에다 출신 지역에 이름을 쓰고, 머리말에는 “심술 많은 서모(일본)에게 죄 없는 구박을 받고, 옛 어머니(한국) 생각하고 머리 맞대고 울어본 적이 몇 번이며, 젖 먹던 힘을 모아 반항한 적이 몇 차례냐!”고 적었다.


나라가 어지럽다. 구한말의 위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조국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은 모교와 동문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모교사 편찬의 진정한 의미는 무거운 책 발간을 넘어 모교인들에게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갈 때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