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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호 2016년 1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인의 제1 가치는 품격

정성희 동아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인의 제1 가치는 품격


서울대가 얼마나 대단한 학교인가를 학부모가 되고 알았다. 모교에 자녀를 보내길 원하는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에 끼어 앉아 “서울대 합격은 하늘이 결정한다”는 강사의 설명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스스로에게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서울대인임이 많이 부끄러웠다. 사회지도층인 동문들이 학연을 핑계로 부도덕한 일을 일삼아 물의를 빚는 걸 보며 서울대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몇몇 개인의 일탈일 뿐 서울대 동문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 사회 최고엘리트가 이렇게까지 타락했다면 그런 엘리트를 선발하고 길러내는 교육시스템에도 고장이 났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서울대는 시대적 소명과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 채 학벌만 좋은 천민엘리트를 길러내고 있고 그 결과가 올해 드러난 일련의 사태가 아닐까.

일본의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지적한 대로 대학이 지성의 공간이 아니라 회사원을 길러내는 장소로 변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 다카시가 이런 지적을 한 것이 1997년이나 한국의 2016년도 다르진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런 상태로 가면 일본은 아무 의미도 없는 고학력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한국이 지금 그렇다. 고학력 고스펙 실업자가 넘치고 공부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청년이 쏟아진다.

"서울대인 품격 올리면 나라의 품격 상승"

다카시는 학력저하나 부실한 교양교육의 문제를 지적했으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서울대가 예비 지도층인 학생들에게 삶의 가치와 품격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서울대가 상류를 길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상류는 지식 돈 권력이 아니라 내면의 상류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상류의 탄생(김명훈 저)’에 따르면 상류란 내면의 계급이 높은 사람이다. 내면의 품격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의 품계다. 내면의 상류는 속도보다 깊이를, 유행보다는 가치를, 획일성보다 다양성을, 지식보다는 지혜를, 외양보다 내면을, 개인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제도보다는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혹자는 대통령중심제의 한계를 말하지만 그보단 국가 최고지도자의 캐릭터가 빚은 참사라고 봐야 한다. 사람이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덕목이 품격이다. 서울대인 하나하나가 품격을 갖추게 되면 나라 전체의 품격이 올라간다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