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62호 2016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한 老동문의 절규

이선민 조선일보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한 老동문의 절규

이선민(국사80-84) 조선일보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동문인 송 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특혜와 책임’(가디언)이란 책을 펴냈다. ‘한국 상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자신의 생애가 집약돼 있다고 말한다. ‘젊은 날 절대절망 속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룬 과정을 지켜본 사람’으로 선진국 문턱에서 헤매고 있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고언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뉴 하이’(new high), 즉 새로운 고위직 집단의 사회적 책무이다. 그는 20세기 후반 격동의 시기에 두 세대 안에 만들어진 한국의 고위직 집단은 오랫동안 형성된 구미 선진국의 상층, 즉 ‘올드 하이(old high)’와는 달리 뿌리가 없고 지위에 걸맞은 자기 훈련의 기회를 갖지 못해서 역사성·도덕성·희생성·단합성이 결여돼 있고 천박한 언행으로 비난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처럼 우리 사회의 상층이 특권만 누리고 의무는 저버린다면 한국은 선진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사회의 상층은 사회 중심부에 위치하며 권력을 지닌 ‘위세(威勢)고위직’과 그 근접부에 있으며 사회적 신뢰가 높은 ‘위신(威信)고위직’으로 구성된다. 전자는 고위 정치인·법조인·관료이고, 후자는 고위 교육자·언론인·종교예술인·의료인이다. 이들의 출신 대학을 보면 모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특혜를 많이 받았으니 책임도 져야 한다”는 송 복 교수의 질타를 받는 대상이 ‘서울대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송 교수는 다름 아니라 동문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꾸짖고 있는 것이다.


영국 상층으로 대표되는 선진국 상층이 지위에 걸맞은 도덕적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원동력은 가정과 학교 교육을 통해 전수되는 ‘기풍(discipline)’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가정교육이 사실상 붕괴됐다. 그런 상황에서 대학에 기풍 교육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상층을 길러내는 모교의 사명은 중차대하다. 성낙인 총장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인재’를 서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으로 제시한 것은 ‘서울대생은 이기적’이라는 세평을 넘어서기 위해서였다. 서울대생에 대한 민족과 국가의 요구는 ‘선한 인재’에서 그치지 않는다. 송 복 교수의 절규를 들으며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대생의 ‘사회적 책무’를 함께 강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