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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호 2016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알파고가 일깨운 시대적 과제와 서울대인의 책임

이계성 한국일보 논설실장, 본지 논설위원



인류 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는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인공지능 분야에 우리나라가 너무 뒤처져 있다는 자각과 함께 가속화하는 기술발전 시대에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는 공감대의 형성은 알파고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어낸 20대 총선에서 각 당이 경쟁적으로 과학자 출신 인사들을 비례대표 최우선 순위에 배치한 것도 알파고 효과였다.


인공지능 같은 기술 발전의 미래는 복합적이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의 도래라는 묵시록적 우려가 있는가 하면 기술의 도움으로 문명세계의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함께 한다. 기술 발전을 둘러싼 문제 외에도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확대, 기후변화 등 우리 시대가 봉착한 중요한 문제들이 숱하다. 그 미래는 결국 우리 인간의 지혜와 창조적 역량에 따라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결국 일찍이 인류사에서 경험한 바 없는 전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어떻게 키워내느냐는 교육의 문제다. 여기서 새삼 모교 서울대학교의 사명과 역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서울대는 우리사회의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또 최고 수준의 교수진을 확보하고 있다. 그런 서울대가 우리나라, 나아가 인류 미래가 걸린 과제들을 풀어가는 데 앞장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서울대 안팎서 제기되는 지적들은 서울대와 서울대인들이 과연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최고 수준의 인적 자원을 독점하면서도 최고의 성과는 못 내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모교의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라는 연구보고서를 내놓았다.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모교의 강의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주입식, 암기 위주 수업 실태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큰 파문을 일으킨 보고서다.


일부 반론도 없지 않지만 그런 강의와 수업 분위기에서 21세기의 과제를 선도해 풀어갈 창의적 인재들이 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경쟁상대인 외국의 유수 대학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서울대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교 당국도 신입생 선발과 수업 및 평가 방식에서 혁신적인 방안을 도입하기 위해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물론 모교와 교수들만의 책임은 아니다. 우리사회 전체 풍토와 문화의 문제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화의 출발점은 모교 당국과 교수, 그리고 서울대인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중차대한 과제와 책임을 서울대인 모두가 기꺼이 떠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