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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호 2016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선거도 결국 절박함이 이기더라

방문신(경영82-89) SBS 보도국장·본지 논설위원


선거도 결국 절박함이 이기더라


방문신(경영82-89) SBS 보도국장·본지 논설위원



바야흐로 선거철, 정치의 계절이다. 누가 이길까? 어떤 이는 인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정책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그냥 다 싫다고 한다. 고요한 듯 출렁거리고, 출렁거리는 듯 고요한 그 민심을 누가 감히 예측하랴만 그래도 짧지 않은 정치판 취재 경험상 터득한 나름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1. 설명이 짧은 쪽이 이긴다. 2. 더 절박하게 비쳐지는 쪽이 이긴다. 부연하자면 첫째, 설명이 짧다는 것, 즉 짧은 메시지는 주장이 명료하다는 뜻이다. 말의 전파속도도 빠르고 임팩트도 커진다. 자세한 긴 설명이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경험상 ‘Absolutely Not’이다. 둘째,같은 말을 해도 절박함이 느껴져야 한다. 그래야 듣는 이의 마음이 움직인다. 절박함이란 무엇인가? 내 것을 던져버리겠다는 메시지이다. 기득권 포기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빈말은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중요하다. 유권자들은 수십년간의 과거 인생역정을 보면서 동시에 그 후보의 미래를 함께 읽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느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눈빛, 태도, 말투를 더 중시한다. 말의 내용보다 눈빛, 태도, 말투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더 진짜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른바 험지에서 이변을 만들어내는 후보들에게는 다 이런 공통적 특징이 있다. 절박함, 그리고 그 절박함이 만들어내는 짧은 메시지다. 절박함은 오만을 버렸다는 뜻이고 짧은 메시지는 고민의 응축도가 높다는 뜻이다. 승패를 가르는 요인은 수백개가 넘겠지만 ‘결국은 절박함이 이기더라’는 것이 정치부 현장기자 시절 터득했던 내 나름의 관전 포인트였다.

이런 특징이 어디 정치판 뿐이랴? 따지고 보면 우리 주변의 삶 거의가 그렇다. 리더십과 소통을 포함한 경영 이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절박함>=<공감>으로 대체될 수 있는 단어이고 <짧은 메시지>=<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이다. ‘공감’ 또는 ‘선택과 집중’이 성공하기 위한 또 다른 조건이 있다. 시대정신을 읽는 눈이다. 그럼 시대정신이란?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된, 그래서 대중들이 가장 갈구하는 것의 총합 아닐까? TV 방송사 보도 책임자로 일하다 보니 항상 그런 개념어를 고민하게 된다. 뉴스 속 빅 이슈나 어젠다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대정신은 살아 숨쉰다.

사회의 불공정성이 화두가 됐을 때는 , <나는 가수다>처럼 진짜 실력만으로 겨루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떴다. 1인가구의 증가, 나만의 공간을 중시하는 사회·경제적 분위기에 편승해 요즘은 <먹방>, <쿡방> 프로가 주목받고 있다. 혼자 밥먹는 사람이 많아지자 먹방, 쿡방에서 리얼리티를 느끼는 것이다. 동경특파원으로 근무했던 15년 전 일본의 모습이기도 한데 그 상황이 한국 TV에서 ‘현재의 시대상’으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대박난 TV 프로그램은 뭐가 다른 걸까? 대중들이 빨려들어가는 키워드는 뭘까? 진짜(Reality)가 주는 절박함. 진정성(Authenticity)에서 느끼는 끌림, 새로움(Freshness)이 만들어내는 동력. 이 세 가지 아닐까 싶다. 뉴스 제작도 이런 콘셉트를 최대한 담아달라고 현장기자들에게 많이 주문한다. 그래야 작은 아이템 하나에서도 시청자들이 공감하는 시대정신이 느껴질 것 같아서다. ‘현재에 대한 불만(不滿)’, ‘미래에 대한 불안(不安)’ 이 두가지 화두에 답해주고자 하 는 마음 때문이다. 정치도 그런 화두가 제1의 존재 이유라면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더 절박하게 다가서는 후보, 더 많이 내려놓는 후보, 시대정신을 읽는 진짜 후보들이 많이 선택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