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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2023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2위에게 가혹한 ‘K클래식’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 문화부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느티마무칼럼
 
2위에게 가혹한 ‘K클래식’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 문화부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한국 ‘콩쿠르’ 강국이지만
클래식 강국과는 거리 멀어 


서울대 음대생 바리톤 김태한(23)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지난해 최하영(첼로)에 이어 2년 연속 한국 연주자 우승이다. 이 대회는 ‘첼로-성악-바이올린-피아노’ 부문을 번갈아 여는데, 2014년, 2015년에도 황수미(소프라노), 임지영(바이올린)이 연거푸 제패했다. 4년 주기의 미국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에서도 선우예권과 임윤찬이 잇따라 우승했다.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 국제 콩쿠르에서 가장 많은 우승자를 배출한 ‘콩쿠르 강국’이다.

경쟁, 경연을 뜻하는 콩쿠르는 형식으로만 따지면 예술보다 스포츠에 가깝다. 순수 예술에서까지 순위를 겨뤄야 하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다만, 콩쿠르 우승이 연주자에게 엄청난 도약대가 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임윤찬이 대표적 사례다. 콩쿠르 심사위원 숫자는 대개 홀수다. 의견이 동수로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다. 국제콩쿠르 심사 경험이 많은 첼리스트 양성원은 “심사위원 한 명의 마음에 따라 우승자가 뒤바뀌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했다. 1위 못지않은 2위도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국내에서 2위가 설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다. 조성진과 임윤찬에게 관심이 집중되면서 콩쿠르 1위들에게조차 그늘이 드리워졌다. 조성진·임윤찬의 공연은 ‘피케팅’(피를 튀길 정도로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 성행하지만 다른 공연장을 찾는 청중의 발길은 더욱 줄었다고 공연장 관계자들은 아쉬워한다. 어쩌면 한국은 콩쿠르 2위에게 가장 가혹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1위가 넘치다 보니 2위가 빛을 보긴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 마포아트센터가 ‘올해의 아티스트’로 피아니스트 김도현을 선정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2021년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박재홍에 이어 2위를 했던 연주자다. 콩쿠르 1위 경력의 연주자들이 수두룩한데도 2위를 점찍은 것. 마포아트센터는 ‘주목해야 할 점은 콩쿠르 순위보다 연주자의 개성과 특별함’이라고 선정 사유를 꼽았다.

요즘 ‘K클래식’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서구의 전유물과도 같던 클래식 음악에서 한국이 강국으로 부상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승을 해도 설 무대가 좁은 나라를 과연 ‘클래식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콩쿠르 강국’은 틀림없지만 아직 ‘클래식 강국’은 아닌 것 같다. 2위에 눈길을 돌린 마포아트센터에 갈채를 보내면서 공연 기사를 쓰는 기자로서 1등만 기억하는 세태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