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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호 2024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박지원이 가난했던 나라

오정환 공법83-87 MBC국장 본지 논설위원

느티나무칼럼

박지원이 가난했던 나라


오정환

공법83-87

MBC국장

본지 논설위원

 

열하일기 베스트셀러 써도 궁핍

합당한 보상없인 도전정신 끊겨

 

열하일기는 조선 사회를 강타한 베스트셀러였다. 수많은 필사본이 나돌고, 신랄한 풍자와 새로운 문체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그러나 저자인 박지원은 엽전 한 닢 받지 못했다. 책을 써 돈을 번다는 건 선비로서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가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난 것은 음서로 벼슬을 얻으면서부터였다. 다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였을까, 박지원은 고문(古文)을 쓰라는 정조의 문체반정(文體反正) 명령을 받아들였고, 이후 그의 창의적인 저술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의사 스기타 겐파쿠가 어렵게 서양 해부학 책을 구입했다. 겐파쿠는 동료 두 명과 함께 번역에 도전했다. 네덜란드어를 몰랐던 그들은 먼저 그림에 나오는 명사를 특정한 뒤 형용사 동사를 추정하는 방식으로 힘겹게 작업했다. 신경 연골 동맥 등 의학용어들이 다 이때 만들어졌다. 그렇게 나온 책이 해체신서였다.

그들이 해부학 책을 번역한 이유는 널리 병든 자를 구하려는 사명감이 전부는 아니었다. ‘해체신서출판 1년 전인 1773년 일종의 홍보 전단지인 해체약도를 찍어 배포했다. 일본에서는 18세기에 벌써 전국 서적 유통망과 저작권 개념이 등장했다. 그 결과 메이지유신 이전 일본의 문자해독률은 80%에 달했다.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제임스 와트는 1769년 증기기관 개량법 특허를 얻었다. 선반기술 부족으로 실용화에 어려움을 겪는 동안 의회가 특허 기간을 15년이나 연장해주었다. 와트는 각지의 광산에 증기기관을 설치한 뒤 증산량의 3분의 1을 받아 거부가 되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개인 재산권의 일환으로 특허권을 보장했다. 그러자 유럽 각국의 기술자들이 성공의 꿈을 안고 몰려들었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202312월 일본에서 이제는 한국 드라마를 배우자는 주제로 한일 제작자 컨퍼런스가 열렸다. 영화 도쿄타워의 감독 미나모토 다카시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제작자들은 상승지향적이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런 활기가 없다.”

경쟁 의지를 없앤 유토리 교육의 후유증인지 잃어버린 30년 동안 노력할수록 더 실패한 경험 탓인지 몰라도, 일본인들의 무력감은 모든 영역에서 발견된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서라도, 우리 안의 도전정신이 꺼지지 않도록 고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눈앞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