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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2023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영화가 된 ‘어른 김장하’ 

이지영 약학89-93 중앙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느티나무칼럼
 
영화가 된 ‘어른 김장하’ 


이지영
약학89-93
중앙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조건 없이 베푼 경남의 어르신
지역 언론이 기록으로 남겨


영화 ‘어른 김장하’가 11월 15일 개봉했다. MBC경남에서 제작해 지난해 마지막 날과 올 1월 1일 2부작으로 경남 지역에서만 방송됐던 휴먼 다큐다. 방송 후 유튜브를 통해 입소문이 난 ‘어른 김장하’는 설 특집으로 편성돼 전국 방송되면서 본격적인 ‘김장하 열풍’을 일으켰다. 4월에는 지역 지상파 방송 작품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을 받았고, 7월부터는 넷플릭스에서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버전으로 재편집, 전국 극장에 걸리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이 만들어낸 역사다.

‘어른 김장하’는 경남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한 1944년생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다. 가난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던 선생은 한약방 점원 생활을 하며 한약 공부를 했고, 1962년 한약종상 시험에 합격했다.

선생은 실력 있는 한약업사였다. 효험 좋은 그의 약을 사러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왔다. 선생은 큰돈을 벌었고, 그 덕을 수천, 수만 명이 봤다. 그는 직원들에게 다른 한약방보다 두세 배 많은 월급을 줬다. 자신의 건물 상가 월세는 30년 동안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학교를 세웠고, 자산 규모가 100억 정도에 달했던 그 학교를 국가에 헌납했다. 지역의 극단과 서점, 인권ㆍ환경ㆍ여성단체들, 심지어 대학 동아리들까지 돈이 없을 때마다 그를 찾아가 지원을 받았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조건 없이 학비를 대줬다.

선행의 규모도 대단하지만 감동을 증폭시키는 건 선생의 정신이다. 장학금을 받고 공부한 학생이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하다”고 하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 답했던 그다. 선생은 “돈은 똥과 같아서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으면 거름이 된다”며 여기저기 나눠줬다. 그리고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 “줬으면 그만이지” 하며 평생을 살았다.

어른이 꼰대와 동의어 취급을 받는 세태에서 선생의 이름은 존경받는 어른의 가능성을 보여준 희망이 됐다. 잘 산다는 게 뭔지 생각하게 하는 선한 영향력이다. 여기에는 2015년부터 선생 취재에 나섰던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와 그 내용을 다큐로 만든 김현지 MBC경남 PD의 공도 크다. 각각 진주와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이들은 줄곧 경남 지역에서 활동했고, 주변에서 자주 들었던 선생의 이야기를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끄집어내 세상에 알렸다. 지역 문화 육성·발전이 전체 사회의 토대를 든든히 다지는 데 왜 중요한지 입증한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