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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호 2020년 1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세상 헤쳐나갈 무기 3가지는 학습·혁신·실행력”

2020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세상 헤쳐나갈 무기 3가지는 학습·혁신·실행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내년이면 삼성전자 입사 40년
최연소 사장단 합류 등 고속승진

남은 과제는 시스템반도체도 1위
133조 투자 1만5000명 채용할 것

2020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선정
“서울대가 든든한 뿌리 만들어줘”


김기남(전자공학77-81) 삼성전자 부회장이 얼마 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술 발전에 대한 공로는 물론 모교와 공동연구소 설립, 인공지능반도체공학 융합전공 지원 등의 기여를 인정받았다. 김 동문은 2021년 삼성전자 입사 40년을 맞는다.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 목표를 세우고 전진 중인 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내년이면 삼성 입사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소회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1981년 3월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기술팀에 입사해서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40년 동안 삼성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순간보다도 지금 현재가 우리나라 반도체와 IT산업이 더욱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고 이에 따른 산업의 지형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어 1년 앞의 미래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인데다, 전 세계 경제 산업이 코로나와 국가간 통상 문제로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5G,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디바이스에 반도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성장에 안주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바로 도태되는 것이 현재의 기업 경영 환경입니다. 기업 경쟁,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서 삼성전자와 우리나라 반도체가 중심이 되어 이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개척하는 일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하는 일이 제 소임이자 역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삼성에 입사하셨는데, 입사 동기가 어떻게 되십니까?
“졸업 당시에는 대부분 동기들이 연구소로 가거나 교수가 되기도 했고, 삼성이나 금성 같은 대기업으로도 많이 갔습니다. 저는 기업이라는 역동적인 환경에서 제 꿈을 펼치기로 결정했고, 1981년 삼성전자 산학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입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선배들을 만나고 한 우물을 판 덕분에 40년 반도체 엔지니어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입사 초기 카이스트에서 석사과정도 밟으셨는데.
“고 이건희 회장님께서 반도체에 관심이 많으셨고, 회장님의 배려로 입사 후 카이스트에서 2년, 1988년부터 미국 UCLA에서 5년간 반도체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환경이나 우리 회사 규모를 고려해 보면, 회사 다니며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큰 기회였고,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관련해 480여 편의 논문과 국내외 35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회장님의 일생을 반도체와의 사랑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반도체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습니까?
“반도체는 한마디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분야이고, 제가 하는 일이 인류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저는 미래 기술을 담당하는 종합기술원과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일을 했지만, 말씀대로 반도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사실이고, 개인적으로도 노력을 많이 했고 애착이 많습니다.”

-가장 보람 됐던 일을 꼽으신다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1메가 D램을 개발한 일입니다. 당시 미국 현지법인과 국내 반도체연구소에서 동시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쟁하고 있었는데, 제가 담당하던 국내 반도체연구소의 결과물이 최종 채택됐습니다. 1메가 D램 개발 성공은 삼성전자가 메모리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게는 본격적인 반도체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했고, 그 경험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는 엔지니어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두 번째는 반도체연구소에서 차세대 연구팀을 이끌던 시기입니다. 당시 수 백명의 연구원들과 하루도 쉬지 않고 연구개발에 집중했고, 그 결과 나노 공정기술, 차세대 플래시, P램, M램 등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차세대 먹거리를 개발한 것이며 한국이 초격차 메모리 기술 경쟁력을 여전히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추가로 개인적으로는 2003년에 전자업계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갖는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fellow)에 선정됐고, 같은 해 삼성에서도 우수 기술 인력에게 부여하는 ‘삼성 펠로우’ 자격을 얻은 것이 생각납니다. 펠로우는 특정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이니만큼 개인적인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서울대 공대와 산학협력도 이뤄지고 있지요?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서 협력하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018년 삼성전자는 서울대와 국내 반도체 분야 발전과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산학협력 협약식을 가졌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반도체는 AI(인공지능), 5G, IoT(사물인터넷) 등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으로 기초과학부터 공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구성과 창출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대학 내 반도체 관련 교수와 석박사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 수마저 매년 줄어들고 있어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삼성전자 산학 전담 조직인 ‘산학협력센터’를 신설하고 물리, 수학, 화학 등의 기초과학 연구지원, 반도체 분야 교수 채용 촉진, 석박사 장학금 확대, 반도체 연구를 위한 첨단설비 인프라 무상 제공 등 대학과 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삼성전자가 메모리를 넘어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위를 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는 것이 제 과제입니다. 삼성전자의 강점은 반도체 분야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 1위인 메모리와는 달리 시스템반도체는 아직 우리가 성취해 나가야 될 영역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분야 연구개발 및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국내 R&D 분야에 73조원을 투자할 것이고 이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인력 양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기업의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와 대학과 중소 협력회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가 강화된다면, 우리나라가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세계를 리딩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대학교가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회장님께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현재의 반도체 사업은 결단을 내리신 고 이병철 선대회장님을 포함해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기까지 헌신하며 이끌어주신 선배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얼마 전 돌아가신 고 이건희 회장님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2020년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받으셨습니다. 몇 해 전에는 자랑스러운 공대인상도 받으셨지요? 서울대는 부회장님께 어떤 의미일까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더 어깨가 무겁습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바로 그 뿌리를 잘 자라게 해주는 역할로 저에게는 서울대학교가 그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학교와 선후배님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교 졸업식장에서 축사하신다면,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지요.
“수많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급변하는 글로벌 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들이 몰락한 원인은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기술과 사업에 도전하는 대신, 자신들의 히트 상품과 성공했던 사업 모델을 끝까지 고수했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치열해지는 세상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혁신가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끊임없는 학습과 자기 혁신, 그리고 철저한 실행력이 필요합니다.
후배 서울대인이 이 세 가지 역량을 통해 자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길 바랍니다. 최고 전문가는 불확실성과 심화되는 경쟁 속 환경을 도전과 혁신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하고, 집중해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 정장에 있는 펜과 횃불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지식의 탐구를 통해 겨레의 길을 밝히는 데 앞장서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끊임없이 학습하고 노력해 계속 성장해 나가는 서울대인이 되길 바랍니다.”

-엔지니어로서 국내 장영실상부터 해외 IMEC 평생혁신공로상 등 많은 상을 받으셨습니다. 뭔가를 만들거나 분해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이과적인 능력이 탁월하셨습니까? 이와 관련된 취미를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아 백과사전을 거의 통으로 외울 만큼 독서를 끊임없이 했습니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세계 석학들의 최신 논문과 보고서 탐독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현장에 적용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지난 40년간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잠시도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관심을 놓은 적이 없습니다. 요즘도 세계 석학들의 논문을 찾아 읽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통찰력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40년차 반도체 엔지니어로서 ‘빨리, 열심히, 잘하자’라는 가치 아래 끊임없이 공부하고 도전하는 반도체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또한,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기까지는 고 이병철 선대회장님, 고 이건희 회장님을 비롯해 선배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헌신과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삼성전자가 영속적으로 탄탄해지기 위해 기여한 CEO가 되고 싶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위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문제의 본질을 정의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임직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기도 하지만, 임직원들과 함께 매일같이 산책하며 문제를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고 있습니다.”

김남주 기자



김 동문은

40여 년간 반도체 업계에 몸담으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을 크게 도약시킨 주인공이다. 전자공학 전공으로 모교에서 학사학위, 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삼성전자 반도체제조기술팀에 입사해 반도체연구소장을 거쳐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 반도체 메모리사업부 사장, DS부문장 겸 사장을 역임하며 1메가 D램부터 4기가 D램까지 반도체 기술의 세계 최초 개발을 이끌었다.

삼성전자에서 최연소 이사대우 승진, 최연소 사장단 합류 등 고속 승진 기록을 세우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2003년 ‘삼성 펠로우’에 선정됐으며 한국공학한림원 및 미국공학한림원 회원이자 미국전기전자학회 석학회원에 오르는 등 세계 반도체업계와 학계에서 모두 인정받는 기술 전문가로 꼽힌다.

2003년 IR52 장영실상, 2010년 제45회 발명의 날 기념식 금탑산업훈장, 2017년 세계 최대 반도체 연구소 아이멕이 수여하는 평생혁신상을 받았다. 지난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