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5호 2023년 8월] 뉴스 모교소식
융합으로 미래 연다, 첨단융합학부 218명의 도전
첨단융합학부 신설, 내년 출발
융합으로 미래 연다, 218명의 도전
첨단융합학부 신설, 내년 출발
8월 1일 관악캠퍼스 기초교육원에서 열린 첨단융합학부 학내 공청회에서 송준호 설립준비단장이 첨단융합학부 교과과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4월 모교는 2024학년부터 정원 218명 규모의 첨단융합학부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디지털헬스케어 △융합데이터과학 △지속가능기술 △차세대지능형반도체 △혁신신약 등 5개 신생 전공을 포함한 학부다. 이로써 1990년대 이후 3300명대로 유지됐던 모교 입학 정원이 30여 년 만에 순증했다. 당장 7개월 후에 신입생이 들어오는 만큼 모교는 분주하게 학부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모교가 첨단융합학부를 설립하는 배경엔 정부의 반도체 인재 양성 정책이 있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부족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고, 한 달 뒤 교육부 등 5개 부처에서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는 반도체·AI 등 첨단분야 학과 신·증설 규제를 완화해서 10년간 반도체 인재 15만명을 키운다는 방안을 내놨다. 향후 10년간 반도체 분야에서 12만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 공급 규모는 10년간 5만명에 불과하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었다. 그간 교육부는 학령 인구 감소에 대응해 대학 정원을 유지·감축하도록 유도해 왔지만, 첨단분야에 한해 정원 증원이 쉽도록 대학설립·운영규정도 개정했다.
모교가 교육부의 첨단분야 증원과 학과 신설에 대한 안내를 받은 것은 지난해 12월. 한 달간 검토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 1월 공대 시스템반도체공학전공과 약대 첨단신약학과 신설 및 기존 학과 증원을 포함해 총 334명을 증원 신청했다.
그러나 3월 초 교육부에서 ‘보다 융합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과정을 제시하라’는 보완 요청을 받고 틀을 다시 짰다. 모교는 첨단분야 인재 양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미래지향적 융합 인재 양성의 필요성, 모교 중장기 발전 계획과의 관련성을 고려해 공통핵심역량 교육과 첨단 분야 심화전공 교육에 중점을 둔 새로운 교육기구 신설을 3월 말 새롭게 제안했고, 한 달 후 5개 전공(디지털헬스케어, 융합데이터과학, 지속가능기술, 차세대지능형반도체, 혁신신약)과 정원 218명 증원을 골자로 한 첨단융합학부 신설이 승인됐다.
전공없이 입학해 영역 넘나들며 적성 찾기
디지털헬스케어·융합데이터과학·지속가능기술·차세대지능형반도체·혁신신약 5개 전공 포함
3학기까진 교양교육, 이후 전공 선택
자립적 전공 탐색과 진로 설계 중점
첨단융합학부 설립 준비 과정은 5월 말 2024학년도 입학전형 발표를 시작으로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장 가을부터 수시로 148명, 정시로 70명의 신입생을 모집해야 하는 만큼 빠르게 설립추진단이 꾸려졌다. 추진단이 교원 배치와 공간 확보 등을 논의하는 동시에 실무위원회와 전공별 소위원회에서는 교양과정과 전공별 교과과정 초안 등 학사 운영에 필요한 사항들을 논의했다. 7월 초엔 설립 준비단이 발족돼 송준호(토목공학92-96)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단장으로 임명됐다.
첨단융합학부의 큰 틀은 교육부 신청 단계부터 정해졌다. 입학 후 3학기 동안 교양과 학부 공통 교과목을 들으며 융합 역량을 키우고 5개 분야의 전공을 탐색한 다음, 4학기부터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골자다. 무전공으로 입학해 약 1년 후 전공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자유전공학부와 비슷하지만, 첨단융합학부는 5개 첨단 분야 전공 내에서 고른다는 점이 다르다.
각 전공별 목표는 융합적 소양을 갖추고 산업체와 연구, 국가정책 분야에 진출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디지털헬스케어 전공은 미래 헬스케어 신기술 개발을 위한 공학·의학의 융합을, 지속가능기술 전공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다양한 에너지·소재 관련 과학기술의 융합을 내세웠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 전공은 새로운 지능형 반도체를 설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려 한다. 혁신신약 전공의 경우, 약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하지 않고 창약(신약개발)에 중점을 둔 기초과학·약학의 융합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융합데이터과학 전공은 데이터과학이 응용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융합 인재를 양성한다.
이러한 기조로 7월 말 학부 전체의 교과과정과 학부 운영 계획의 초안이 완성됐다. 교과과정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8월 1일 열린 학내 공청회에서는 추진단 단장인 김성규 교육부총장과 이지현 교육부처장, 송준호 설립준비단장, 교양과정 및 5개 전공별 소위원회 대표교수가 교과과정 초안을 소개했다. 온·오프라인으로 300여 명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첨단융합학부는 “첨단과학 기술 전문성뿐만 아니라 초학제적인 융합 소양과 소통, 협업 능력을 갖추고 공동체의 난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인재상”을 내걸었다. 교과과정 초안에서 눈에 띄는 것은 1년 동안 배우는 교양 과정 ‘베리타스 세미나’(가칭)와 ‘베리타스 프로젝트’(가칭)다. ‘베리타스 세미나’는 다양한 전공 교수진의 지도 하에 기후 위기와 인류, 인간과 동물 등 초학제적인 주제를 정해 소그룹 토론과 글쓰기 등을 하는 수업이다. ‘베리타스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 팀을 이뤄 본격적으로 현실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활동을 펼친다.
유홍림 총장이 “첨단융합학부에서 시작해 향후 전 신입생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힌 공통 교양으로, 기초교육원에서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여타 기초 교양 이수 조건은 타 학과와 같되, 첨단융합학부생들은 수학·과학·컴퓨팅 분야의 교양과목 1개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송준호 설립준비단장은 “첨단융합학부는 5개 전공 간의 융합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로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담긴 교육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충분히 보장하되, 전공 탐색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아카데믹·라이프·커리어’의 전방위적 멘토링을 통해 학생들을 돕겠다는 것이다. <하단 인터뷰 참고>
학부 공통 교과목에도 이같은 취지가 담겼다. ‘첨단융합전공과 나의 미래’(가제)는 첨단융합학부에서 배울 내용의 설계도 같은 과목으로, 3학기까지 5개 전공의 소개와 롤모델 특강, 전공별 개론 학습과 실습 등을 차례로 들으며 자신에게 맞는 전공을 찾아 가도록 개발되고 있다.
전공을 선택한 후엔 ‘패스웨이(Pathways)’ 과목을 듣게 된다. △기술창업 △창의연구 △정책리더십 중 하나를 선택해 해당 분야에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인턴십 등을 통해 학교 밖 현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과목이다. ‘기술창업 패스웨이’ 과목을 선택할 경우 각 전공별 창업 교과목을 듣고, 타 학과에서 마케팅과 투자유치 등 실무 과목을 이수한 후 첨단융합학부가 연계해주는 창업 인턴십을 하게 된다.
촉박한 기간이지만 설립준비단은 교원과 공간 등 인프라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확정된 공간은 관악캠퍼스 18동. 인접 분야인 공대 및 약대, 자연대와 가까운 위치로 기존 입주 학과·기관과 협의 끝에 학부 전담 강의, 행정업무, 학생활동 등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추가 확보를 진행 중이다. 교원은 4개 학년이 모두 입학하는 2027년까지 40여 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속 변경 또는 겸무 등 학내 구성원을 활용할 예정이며, 신규 임용 또한 순차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첨단융합학부는 역대 신설 학과와 기관 중 드물게 학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며 추진되고 있다. 모교는 10여 일간의 학내 의견 조회를 통해 교과과정과 교원, 공간 등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학부 영문명도 공모에 부쳤는데, 단 며칠 만에 1500여 명이 참여했다. 선배가 없는 신설 학부 특성상, 총학생회가 학생처와 면담을 통해 18동 인근 학생식당 증설을 요구하는 등 신입생에게 필요한 사항을 챙기고 있다.
공청회에서는 압축적인 교과과정의 문제와 전공 쏠림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이 주로 나왔다. 공대 등 인접 학과의 재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특정 교과목을 배우는 시기가 너무 이르거나 늦다는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준비단 측은 “전공에 쓸 수 있는 시간이 타 학과보다 적은 만큼 해당 분야의 커리큘럼을 재편해 효율적으로 교과목을 구성했고, 전공 쏠림 문제는 밀착 지도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요지로 답변했다. 인턴십을 제공하는 패스웨이 등의 프로그램이 차별 지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송준호 단장은 “패스웨이는 교과인증과정으로 개발해 첨단융합학부 외 학생도 들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첨단융합학부 실무위원회와 설립추진단은 8월 말 교과과정을 확정하고 9월부터 교과목 신설과 편성 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박수진 기자
박수진 기자
인터뷰
“창의적 사고, 어울리고 섞여야 나온다”
송준호
토목공학92-96
첨단융합학부 설립준비단장
송준호 첨단융합학부 설립준비단장은 내년 학부 신설과 동시에 초대 학부장으로 부임한다.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일리노이대에서 정년을 보장받고도 “한국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뜻으로 2014년 모교에 부임, 구조공학과 리스크 및 신뢰성 공학을 연구해왔다. 첨단융합학부를 통해 모교의 교육 혁신에 앞장서게 된 그를 8월 7일 35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단시간 내에 학과 설립이 많이 진전됐다.
“5월부터 두 달간 설립추진단은 7차례, 실무위원회는 10차례 회의를 열었다. 추진단 구성만 봐도 이번 학부 신설에 우리 학교의 학부교육 혁신 의지가 담겼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수의 주도가 아니라 자연대, 공대, 약대, 기초교육원과 인문·사회대 소속까지 총 26개 학과, 학부 교수님이 참여해 교과과정 초안을 준비해왔다.”
-교육부 선정 과정에서 첨단 학과의 ‘융합 교육’을 강조했는데, 모교는 어떻게 받아들였나.
“서울대는 교육부의 주문을 ‘융합교육을 통한 첨단분야 국제선도’로 이해했다. 퍼스트 무버가 되고, 초격차를 확보하려면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학생들을 양성해야 하고, 서울대가 그런 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표로 구체적인 안을 마련했다. 유홍림 총장님께서 취임 당시 학내에서 많은 공감대를 얻었던 ‘학부과정 융합교육’ 구상과도 통하는 점이 있었기에 학교에선 무척 좋은 기회로 여겼다.”
-4년 동안 융합과 첨단을 모두 배울 수 있을까. ‘수박 겉핥기’가 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융합과 첨단은 대립되는 두 마리 토끼가 아니다. 그보다 ‘융합을 통한 첨단’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학교는 하나라도 더 많이 알아가길 바라면서 많은 과목의 이수를 요구하게 마련이지만, 융합의 기치 하에선 교과과정이 더 유연해져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학생들이 정말로 원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꼭 필요한 교과목과 전공을 선택하도록 돕는 데 교과과정의 방점을 뒀다. 학사·석사 연계도 권장한다.”
-전공과 진로 탐색 교과목을 둔 것이 그 이유 같다. 개인별 멘토링도 지원한다고.
“진로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지만, 교과과정을 통해 필요한 정보와 경험을 주면서 적극적인 탐색을 장려하고 싶었다. 진로 탐색 과목인 ‘패스웨이’ 과목은 교육적 효과도 노렸는데, 일례로 ‘창업 패스웨이’의 경우 사회적 책임감, 도전정신, ‘안전한 실패’ 경험 등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구성하고 SNU공학컨설팅센터 등 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개발하고 있다. 또 학부 건물 한 층의 절반을 학생 공간으로 꾸미고, 전문 멘토링 인력이 학생들의 교육부터 생활까지 돌볼 계획이다. 선배들도 없는 학과에 용기 있게 들어온 학생들 아닌가. 한 명 한 명 정말 잘 키워줘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첨단융합학부에 맞는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자기주도적 학습능력과 소통, 협업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면 학부의 커리큘럼과 제도를 더 잘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학생도 변화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할 것이다. ‘융합을 통한 첨단’은 융합 이론을 배운다고 가능한 게 아니라 통섭의 문화와 공동체를 통해 체득하는 소양이라 믿는다. 차세대지능형반도체 전공 친구를 둔 혁신신약 전공자에게서 어떤 멋진 생각이 나올지 모른다. 서로 어울리고 섞이면서 ‘Think Outside the Box’(창의적 사고) 능력을 키워가길 바란다.”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첨단융합학부는 오로지 학부 교육 잘 시키는 것이 목표인 곳이다. 즉, 대학원을 두고 연구사업과 과제를 수행하는 단과대학에 비해 재정이며 기금 조성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동문님들의 투자와 응원이 절실하다. 첫 신입생이 전공에 진입하는 2025년 2학기부터 전공 분야 실습 실험 기기와 공간이 필요해진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서울대 전체 교육의 혁신에 투자한다 여기시고, 많은 조언과 도움 주셨으면 한다.”
1829명 증원, 모교 가장 많아
이번 첨단분야 정원 증원을 통해 모교를 비롯해 수도권 대학 10개교에서 817명, 비수도권 대학 12개교에서 1012명의 정원이 순증했다. 고려대, 연세대 등은 기존 학과를 증설하는 형태로, 모교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은 학과를 신설하는 형태로 증원이 이뤄졌다. 수도권에선 모교(218명), 가천대(150명), 세종대(145)명 순으로, 비수도권에선 경북대(294명), 전남대(214명), 충북대(151명) 순으로 증원이 많았다. 분야별로 전체 순증 인원 1829명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분야는 반도체 관련 학과(654명)였다. 그 다음 미래차·로봇·스마트 선박(339명), 에너지신소재(276명), 바이오(262명), 인공지능(195명), 소프트웨어·통신(103명) 순이었다. 교육부는 △특성화·지역산업·관련 학과 간 연계 △교육과정 개편, △교원확보 우수성 △실험·실습기자재 보유여건의 4개 기본지표와 학과 간 연계융합 노력 등 대학의 의지를 함께 고려해 선정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