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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호 2024년 10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145m 너머 겨누는 국궁, 발전하는 재미 있어요”

국궁 동아리 서울대 국궁부

“145m 너머 겨누는 국궁, 발전하는 재미 있어요”


동아리 탐방
국궁 동아리 서울대 국궁부





야구장에 과녁 놓고 연습
대학 연맹전 2관왕 강팀



“많이 굽혀도 안 부러지니까, 겁먹지 마시고 걸어 주세요.” 10월 2일 저녁 모교 관악캠퍼스 야구장. 임종규(언어21입) 국궁부 주장이 부원에게 활에 줄 거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다리 사이에 활을 끼우고, 한껏 휘어뜨려 팽팽하게 줄을 거는 동작이 녹록지 않아 보였다. 조준기며 안전장치 등이 달린 양궁 활과 달리 국궁 활은 활대와 줄만으로 간결한 모양. 그렇지만 줄을 걸고 활시위를 당겼다 놓자 단숨에 멀리 날아가는 화살의 위력은 기대 이상이었다.

모교 국궁부는 2013년도에 뿌리를 내렸다. 당시 학교 국궁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결성했고, 2017년 학교의 정식 운동부로 인정됐다. 비공식 명칭으로 ‘설궁’이라고도 부른다. 현재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야구장에 이동식 과녁을 놓으면 이들의 활터. 주 3회 저녁마다 정기 연습인 ‘습사’가 열린다. 허리에 궁대(허리띠)를 두르고, 과녁이 손톱만 하게 보이는 자리에서 낭창한 활을 힘껏 당기는 이들의 모습이 진지했다. 마침 멀찍이서 연습 중인 양궁부의 과녁과 사뭇 다른 국궁 과녁이 눈에 들어왔다. 가로 세로 2m의 과녁 상단에 있는 한일자 표식을 임 주장은 ‘눈썹’이라고 설명했다. 그 아래 검은 색으로 칠한 4각의 ‘정곡흑관’, 흑관 중앙에 커다랗고 붉은 원 모양의 ‘홍심’이 있다. “눈썹은 ‘표(標)’를 잡을 때 씁니다. 조준할 때 기준점을 잡는 거죠. 양궁은 중심에서 가까울수록 점수가 높은데 국궁에선 홍심이든 아니든 과녁 전체 아무 데나 맞히기만 하면 1점이에요. 못 맞히면 0점이고요.”

이처럼 특이한 점수제는 역사에서 기인한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엔 관중(貫中), 변(邊), 불중(不中)의 3개로 점수가 나뉘었다는데 이제는 관중과 불밖에 안 남았죠. 제가 알기로 같은 사법을 쓰는 만주나 일본 활들은 기마궁술이 주요 전술이어서 무거운 화살을 날리는 데 특화돼 있었어요. 반면 한국 화살은 극단적으로 가벼운 화살을 날리는 데 특화되도록 활을 개량했죠. 정확도보다는 목표 지점에 수십, 수백발을 쏘아 탄착군을 형성하는 데 집중한 것 같아요.”

국궁의 정규 사거리는 145m. 아무 데나 맞혀도 된다지만 그 반절 거리에서 쏴도 ‘관중’은 무척 어려워 보였다. 임 주장은 “신입이 정규 사거리에서 처음 한 발을 맞히기까지 평균 4~5개월 걸린다”고 했다. 초보는 화살촉 끝에 줄을 끼우고 장대에 매달아 쏘는 ‘주살’로 연습해야 하는데, 빌려 쓰는 활터에 주살을 설치할 수 없어 신입 부원들은 뭉툭한 고무를 끼운 화살을 야구장 네트에 쏘며 연습하고 있었다. “본래 빈 활만 한 달 연습하는 게 정석이지만, 화살 쏘는 재미를 느끼게 하려고 약한 활로 습사를 일찍 시킨다. 줌(활을 쥐는 손) 잡는 법 등 필수적인 것만 가르치고 어려운 용어도 쓰지 않으려고 한다. 국궁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실력을 키워나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145m 앞으로 화살을 날리기 위해선 파운드(활의 장력)가 큰 활을 쓸 수밖에 없다. “올림픽 양궁에서 여성 선수가 최대 50파운드, 남성 선수는 최대 60파운드로 제한해 쓰는데 국궁은 실업팀 선수가 55~65파운드를 써요. 활시위도 귀 뒤까지 더 많이 당기고요.” 임 주장의 권유로 30파운드짜리 빈 활을 당겨봤다가 금세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어깨가 뻐근해졌다. 팽팽 화살을 쏘는 부원들이 대단해 보였다.

이들이 국궁을 선택한 이유가 뭘까. 임 주장은 “총, 활 등의 쏘는 운동을 좋아한다. 대학 입학 후 양궁부와 사격부를 놓고 고민하다 국궁부에 들어왔다”고 했다. “국궁은 조준기도 없고 활 자체가 단순하잖아요. 과녁을 맞히냐, 못 맞히냐만 따지고요. 오히려 보조해 주는 요소가 없으니까 순수하게 활 쏘는 사람의 피지컬과 감에 의존해야 한다는 게 좋았어요. 부원들에게 가끔씩 왜 국궁을 택했는지 물어봐도 비슷하더라고요. 양궁보다 심플해서, 더 어려울 것 같아서라고요.” 프랑스에서 양궁 리커브 종목을 배웠다는 한 외국인 부원은 한국의 재래식 궁술을 경험해보고 싶어 들어왔다고 했다. FRP나 카본으로 만든 개량궁을 공용 활로 구비해 두어 장비에 큰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임 주장에 따르면 국궁은 “마이너 중의 메이저 종목”. 전국에 국궁 동호인모임이 활발하고 국궁의 매력에 빠진 대학생도 많다. 서울 내 대학 국궁부만 10여 곳이다. 대학 국궁부들의 공통된 고민은 연습할 활터가 부족하다는 것. 캠퍼스 내에서 정규 사거리를 지켜 쏠 수 있는 대학이 드물다. 모교 국궁부가 사용하는 야구장도 최대한 확보한 거리가 50~60m 정도다.

학교 가까이 ‘관악정’을 비롯해 서울 시내에 활터 10여 곳이 있어 이따금 ‘원사’를 나선다. 베테랑 동호인이 많은 활터 특성상 진중한 분위기가 부담스러울 땐 저렴하고 학생들이 많은 난지 국궁장을 찾는다. 올해 11월 대학 연맹대회를 앞두고 활쏘기 특훈 중이라고 했다. “서울권대학국궁동아리연합(서궁연)에서 봄가을 교류전, 여름에 경쟁전을 열어요. 작년에 저희가 그 대회에서 우승했죠. 교수님들이 주축이신 한국궁도대학연맹에서도 봄가을에 대회를 여는데, 작년 원사 단체전에서 저희가 우승을 했습니다. 올해는 연세대에 뺏겼는데 되찾아와야죠.”

바둑처럼 국궁도 단수가 있어 1단부터 9단까지 입승단대회를 통해 오를 수 있다. 한 순에 5발씩, 총 9순 45발을 쏘아 ‘24중’에 성공하면 1단, 단계적으로 늘려 ‘31중’에 성공하면 5단 합격이다. 반절만 맞히면 되는 1단도 합격률이 10%에 불과하다. 대학 국궁부에서 단수를 가진 학생은 손에 꼽는데, 모교에 2단을 보유한 임종규 주장이 있다. “서울에선 저 외에 광운대에 최연소 5단 1명, 고려대에 1명, 한양대에 1명 있는 걸로 알아요. 저도 초단 시험에 두 번을 떨어지고 세 번째 겨우 붙었다가 운 좋게 2단에 바로 붙었죠. 그렇게 진입장벽이 높고, 잘하기 어렵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내가 계속 발전하는 걸 볼 수 있다는 의미가 있어 좋아요.”

국궁의 또 다른 매력은 고풍스럽고 아기자기한 전통 요소들이다. “활쏘기를 배우고 정식으로 사대에 서는 날 ‘집궁례’를 치러요. 이름이 적힌 궁대를 나눠 주고, 과녁 앞에서 고사 같은 걸 지내기도 해요. 한 순에 5발을 다 맞히는 ‘몰기’를 처음 하면 ‘초몰기’라고 해서 사대에서 같이 쐈던 사람들에게 ‘몰기턱’을 냅니다. 구한말 황학정에서 초하루나 그믐날 진행했던 월례회에서 유래해 ‘삭회’란 모임을 열고요. 심오하고도 재밌는 운동입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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