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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2024년 6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책이 주는 여운, 유튜브 쇼츠 보는 재미와는 다르죠” 

독서토론 동아리 ‘고전연구회’

동아리 탐방
“책이 주는 여운, 유튜브 쇼츠 보는 재미와는 다르죠” 
 
독서토론 동아리 ‘고전연구회’



2주에 한 권씩 책 지정해 토론   
고전·현대 작품 가리지 않아 


“지식과 무관한 절대적 진실이 존재할까?” “같은 작가의 ‘동물농장’과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사상은 무엇이 같고 다를까?”

모교 독서토론 동아리 고전연구회 회원들은 올해 초 조지 오웰의 ‘1984’를 함께 읽고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 패전 이후 일본이 배경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읽을 땐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소설 내용이 당시 시대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2주에 한 번 부원들이 발제한 책을 함께 읽고 벌이는 독서토론이다. 굵직한 질문을 놓고 매달리기도 하지만 대개는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집단적 독백’의 현장이 된다. 개인적 독서와 사회적 독서를 오가는 이 과정 덕에 어려운 책도 꼭꼭 씹어 소화할 수 있다. 고전연구회에서 2년째 활동 중인 양현서(철학23입) 부원과 이메일로 얘기를 나눴다.

1972년 창립한 고전연구회는 역사가 오랜 동아리로 손꼽힌다. 민주화 운동 시절 태동해 주로 동양철학서를 읽고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매번 모임이 끝날 때마다 함께 읽고 토론하고 싶은 책이 있는 사람이 발제할 책을 정해요. 인상깊게 읽은 책이나, ‘영업’해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죠. 예전엔 동양철학 고전을 많이 다뤘다고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범위가 넓어졌어요.” 

‘같이 읽고 싶다’, ‘고전이라 부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제안하면 기꺼이 함께 읽는다. 작년 초에 읽은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도 2000년대 책이다. 30여 명이 등록돼 있고 매번 5명 내외가 자유롭게 토론에 참여한다. 
‘도파민 중독’ 시대에 책 읽기란 쉽지 않다. 30초짜리 유튜브 쇼츠를 보다 보면 두세 시간이 우스운데 책은 단 5분 읽기가 어렵다. 더군다나 영상매체의 세례를 받으며 자라난 지금 대학생들에게 책이 눈에 들어올까. 양현서씨는 “솔직히 저도 가끔 영상매체가 가져오는 즐거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 경우엔 영상매체가 주는 재미와 독서가 주는 재미를 분리해서 생각하려 해요. 실제로 두 가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요. 한 번 독서의 즐거움이 뭔지 느끼게 되면 영상매체가 주는 ‘도파민’을 잠시 잊을 수 있을 정도의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상매체가 주는 여운은 독서를 통해 얻는 여운보다 오래 가지 않아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는 고전연구회 안에서도 자주 오르내리는 화두다. “책은 영상매체와 다르게 상상을 펼치며 읽고, 읽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원하는 대로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점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작가의 생각과 당시 시대상을 독서를 통해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있었죠.”

양현서씨는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재밌으니까’ 읽는 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학업만으로 바쁜데 책 읽기가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엔 “힘들지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어떻게든 다 읽어온다. 사실 독서가 곧 휴식이자 취미인 범상찮은 부원이 많다”고 했다.     

고전연구회조차 다루는 책의 범위가 넓어진 지금, 이들은 고전을 어떻게 바라볼까. “‘고전을 읽어야 한다’기보다 ‘무언가 철학이 담긴 글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란츠 카프카가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적 있죠. 우린 생각할 만한 계기를 주는 텍스트를 읽어야 하는데, 마침 그런 깊은 주제를 다루는 게 대부분 고전이기 때문에 결국 고전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학기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으로 시작해 조지 오웰 ‘1984’, 단테 ‘신곡’,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 등을 읽었어요. 모아놓고 보니 확실히 ‘고전’ 연구회 이름값을 하는 것 같네요.”    

팬데믹을 거치며 선배들과 교류가 거의 사라졌다. 대신 선배들의 손때가 묻은 책들은 동아리방 책장에 대대로 전해진다. ‘논어’, ‘장자’, ‘순자’, ‘국가’, ‘리바이어던’, ‘향연’, ‘군주론’ 등 동서양 철학 고전,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멋진 신세계’ 등 고전문학과 주인을 알 수 없는 각종 전공책이 빼곡하다. 활동 기록이 담긴 사진집과 오래된 독서토론 발제문들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양현서씨는 “동아리방 벽에 정체불명의 거대한 서예 작품이 붙어 있다”고 궁금해 하며 “꽤 오래 전부터 계셨던 전 회장님도 도대체 뭔지 모르시더라. 누가 알려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미나 문화생활 동아리에 비해 공부하는 동아리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 ‘고전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고전연구회도 노력 중이다. 양현서씨는 “신입 가입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꾸준하고, 의외로 공대 쪽 분들이 많이 가입한다”며 “동아리방에 앉아 책만 읽는 건 아니다. 도서전 등 도서 관련 행사도 관람하러 다니고, 최근 중앙도서관 유튜브 ‘샤북샤북’ 시리즈에 출연해 책 읽는 노하우를 공유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