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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023년 3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아이스링크 없어도 피겨가 좋아 뭉쳤죠”


동아리 탐방

피겨스케이팅 동아리 설유회

“아이스링크 없어도 피겨가 좋아 뭉쳤죠”

2년 전 설립, 100여 회원 가입
대관 강습 받고 공인급수 준비도


2월 24일 피겨스케이팅 동아리 설유회 부원들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에서 피겨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2월 24일 금요일 잠실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씽씽 얼음을 지치며 ‘불금’을 즐기는 인파 가운데 연습복을 입은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몇 바퀴 돌며 몸을 풀더니 빙판 안쪽에 모여 시작한 건 피겨 스케이팅에서 본 동작들. 코치의 시범을 눈여겨보고, 섬세하게 중심을 잡으며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눠 쓰는 빙판이 비좁지만 즐겁게 웃고,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닿아도 오로지 강습에만 집중했다. 모교 피겨스케이팅 동아리 ‘설유회’의 연습 풍경이다.

서울대는 ‘빙상운동 불모지’다. 아이스링크가 없으니 당연하다. 그렇지만 비인기 종목이던 피겨가 어느덧 전 국민이 알은 체하는 ‘메이저’가 된 마당에, 취미 동아리 하나 없는 것까지 당연하진 않았다. 2021년 설유회를 만들면서 회장 정다인(디자인 21입)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시간 반 가량의 연습을 마친 그에게 동아리 얘기를 청했다.

“어릴 때 취미로 피겨를 했어요. 대학 가면 피겨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서울대에 없더라고요. 직접 만드는 게 해결책이었죠.” 동아리를 만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찾아와 100여 명이 금세 찼다. “19·20·21학번대가 김연아 선수를 보고 자란 세대거든요. 체육 전공자는 별로 없지만 어릴 때 취미로 해봤거나 강습을 받아본 분들이 많았어요. 차준환 선수를 보고 들어온 남학생도 많아서 10명 중 2, 3명은 남자 부원이에요. 제가 입학하기 얼마 전에 피겨 동아리를 만들려던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게도 많이 도와 주셨어요.”

설유회의 주 활동은 주2회 링크장에서 받는 강습이다. 화요일 오전엔 구로구 소재 링크장을 단독 대관해서 진행하고, 금요일 밤엔 단체 입장권을 구매해 롯데월드 아이스링크장에서 강습을 받는다. 매월 신청을 받는데, 10명에서 많게는 20여 명까지 강습에 나온다.

화요일 강습은 피겨 선수 출신이자 모교 체육교육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우송원 코치가 가르친다. 정다인 회장이 직접 초빙했다. “오래 전부터 코치님 유튜브 채널 ‘우다흰’에서 피겨 레슨 영상을 즐겨 봤어요. 아마추어 강습을 하신다길래 연락처를 알아뒀다가 입학하고 바로 연락을 드렸죠. 매달 수강생들 수준을 보고 프로그램을 짜주시는데, 정말 처음 접하는 분들도 코치님들이 신경써서 차근차근 가르쳐 주세요.”

인터뷰날 강습도 몇 개 그룹으로 나뉘어 한 쪽에선 기본 자세를 익히고, 한 쪽에선 무릎을 꿇고 활주하는 ‘런지’, 한 쪽 다리를 뒤로 뻗고 활주하는 ‘스파이럴’, 앉은 자세로 회전하는 ‘싯스핀’ 등을 연습했다. 정 회장은 “완전히 노 베이스로 시작했는데, 1년 만에 악셀 점프를 준비하는 부원도 있다”며 자랑을 했다.

동작이 예뻐서, 시원해서…. 이들이 피겨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정 회장은 “땅 위에서 하는 스포츠와 좀 다르다. 스케이트를 타면 속도도 빠르고,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하나씩 기술을 몸에 익히는 성취감, 무용과 결합된 예술성에 이끌리기도 한다. “퍼포먼스처럼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동아리에서 약식으로 발표회를 열었던 적이 있어요. 코치님께 안무를 받아서 2~3분짜리 프로그램을 짜봤는데, 전문가처럼은 아니어도 열심히 하면 하나의 프로그램을 완성할 수 있는 게 뿌듯했어요.” 피겨 공인 급수나 생활체육 수준의 코치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는 회원도 있다.

어려움이 있다면 역시 마음껏 쓸 수 있는 링크장이 없다는 점이다. 수강인원 20명 기준 한 달 대관 강습비는 1인당 13만원 정도. “빙상 스포츠를 잘 아는 분들은 저렴하다는 걸 알지만, 학생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있죠. 인원이 모여야 더 싸지는데 비싸서 안 모이는 악순환이 있어요. 레슨비도 고민이지만 대관도 항상 전쟁이에요. 신생 동아리라 불리한 점이 있거든요. 레슨비가 없는 연습대관, 타 대학 피겨스케이팅 동아리와 연합 대관도 생각하고 있어요.”

‘서울대에 아이스링크가 있었더라면’, 이쯤에서 내내 든 생각이 불쑥 입으로 나오자 정 회장이 ‘그러니까요’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가방에서 작은 도구를 꺼내보였다. 맨땅에서 스핀을 연습할 수 있는 스피너다. “3월부터 학교에서 지상훈련을 하려고요. 지상에서도 스핀이랑 점프 연습을 할 수 있거든요. 정식 발표회도 열어보고 싶어요. 전엔 일상복을 입고 했는데, 다음엔 간단하게라도 다같이 대회복을 만들어서 입어볼까 해요.” 꿋꿋하고 씩씩했다.

최근 팀복도 생겼다. 비용을 아끼려 정 회장이 직접 눈꽃 모양 동아리 마크를 디자인하고, 자수업체에 발품을 팔아 기성품에 새겼다. 이렇게 애정을 쏟아부은 피겨 동아리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올해로 중앙동아리 등록 요건도 충족됐다.

“선수도 하셨고, 지금은 국제 심판으로 활동하시는 이수경(체육교육03-08) 선배님이 계실 때 빙상부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잘 유지됐다면 서울대도 역사 깊은 피겨 동아리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죠. 앞으로 많은 서울대생이 피겨를 즐길 수 있게 설유회가 자리를 잘 잡아놓을게요.”

박수진 기자

▷설유회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oulyou_s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