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호 2024년 11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김민기, 노찾사, 브로콜리너마저… 서울대 뮤지션의 산실 ‘메아리’
동아리 탐방
김민기, 노찾사, 브로콜리너마저… 서울대 뮤지션의 산실
밴드동아리 ‘메아리’
메아리는 11월 8일 신촌 몽향에서 5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한 가운데 가을 정기공연 ‘우리 공연 어떰(Autumn)?’을 열었다.
민중가요에서 밴드음악 동아리로
연 4회 공연 , 탄탄한 현장 경험
10월 14일 모교 78주년 개교기념식장. 통기타와 마이크를 든 재학생 두 명이 축하 공연을 위해 단상에 섰다. 기타 반주에 이어 차분히 흘러나온 첫 소절은 ‘긴 밤 지새우고….’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을 받은 고 김민기 동문을 기리기 위해 고인이 몸담았던 모교 동아리 ‘메아리’ 후배들이 준비한 무대였다. 김 동문의 유족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50년 전 선배가 만든 노래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정성스럽게 부르는 모습은 울림이 컸다.
“메아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엄마, 아빠가 ‘김민기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서울대 동문은 아니시지만 학생운동을 하셨거든요. 찾아보니까 초기 메아리에서 활동하신 선배님이셔서 신기했죠.”(이태영 치의학22입) 10월 31일 두레문예관 메아리 합주실 앞에서 만난 메아리 부원들은 메아리와 김민기 동문의 인연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침이슬’은 지금 메아리에선 불러본 적 없다”고 했다. ‘노래패’에서 ‘밴드동아리’로 변모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강동원(지구환경과학23입) 회장은 “김민기 선배님을 기리기 위해 부원들이 새로 노래를 배웠다”고 말했다.
“메아리가 1977년에 창립돼 민중가요를 부르는 동아리로 출발한 건 알고 있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할 때 저희 동아리가 주축에 섰던 것도요. 90년대쯤 대중가요 위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들었고, 지금은 가요와 해외 록 밴드 음악을 커버하는 밴드동아리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강동원)
장르는 달리 해도 메아리는 뮤지션의 산실 노릇을 했다. 노래패 시절엔 ‘그날이 오면’ 작곡가 문승현, 고 김광석 ‘나의 노래’ 창작자 한동헌과 ‘노래를 찾는 사람들’, ‘새벽’ 등의 전문 노래패를 배출했다. 음악 하겠다는 서울대생이면 우선 메아리를 찾았던 것 같다. 90년대 이후엔 눈뜨고코베인, 브로콜리너마저, 아마도이자람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 세션 등 걸출한 인디 밴드 멤버들이 메아리가 뿌리임을 알렸다. 루시드폴(조윤석 응용화학93-99)도 잠시 활동했다고 말한 적 있다.
‘노래패’ 시절 민중가요에 담긴 시대적 사명에 이끌려 왔다면, 요즘은 밴드 음악 유행을 타고 찾아오는 신입이 많다. 보컬을 제외하곤 오디션도 안 보고, 악기를 처음 잡아보는 사람도 환영이다. 이태영 부원은 “최대한 폭넓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골고루 선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보도 자신 있게 받는 이유가 있다. 1년에 2번 모집한 신입을 대상으로 두 달간 ‘대중강좌’가 열린다. 현역 선배들의 집중 레슨을 통해 기타, 신스(키보드), 베이스, 드럼 등의 악기를 배우고 평가곡을 정해 연습한다. “품이 많이 들어도 일단 가르쳐 주고 뽑겠다”는 셈. 권태현(식품동물생명공학23입) 부원은 “기타의 경우 올해 여름 신입에 50~60명 정도 지원하고 5명 정도 뽑았다”고 말했다. 좋은 평가를 받은 부원뿐 아니라 대중 강좌를 성실히 받은 부원, 눈에 띄게 발전한 부원을 선발해 바로 다음 방학 공연에 참가시킨다.
연 4회 여는 메아리 공연은 어느 연행 분과 동아리의 두 배에 달한다. 봄가을 학기 중 정기공연, 여름과 겨울 방학에 ‘MC(뮤직 캠프)’라는 이름의 공연을 연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팀을 짜고 신촌이나 홍대 등지에서 외부 공연을 열기도 한다. 활동 회원 수를 물었더니 아예 정기공연에 참가하는 인원 기준으로 “곡별로 팀을 짜서 활동하는데 학기 중인 봄, 가을 공연엔 20명, 방학 중 ‘MC(뮤직 캠프)’엔 40명까지 참여한다”고 했다.
그래서 동아리방 겸 연습실인 합주실이 1년 내내 바글바글하다. 권태현 부원이 보여준 합주실 예약 시트는 주말에도 하루 종일 부원들이 잡은 연습 스케줄로 빽빽했다. 활동한 지 2년이 지나면 OB가 되어 정기 공연엔 설 수 없지만 합주실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예우’한다. 강동원 회장은 “멤버들이 잘 하기도 하지만 메아리가 다른 밴드 동아리보다 음악적으로 더 많은 자극을 주는 편이다. 연습이 많아 ‘빡센’ 동아리로 소문났을 정도”라고 했다.
인터뷰 날도 시험 기간에 가을 공연을 연습 중인 상황. 공연을 앞두고선 ‘MT(뮤직 트레이닝)’라고 부르는 12시간 마라톤 연습까지 열린다. 전 부원이 모여 무대에 올릴 전곡을 점검하는 날이다. 힘들어도 부원들은 메아리 생활이 즐겁다고 했다. 음대생인 이성현(작곡22입) 부원은 “입시 하느라 오래 친 피아노 대신 메아리에선 드럼을 맡았다”고 소개했다. “긴장감을 느끼면서 공연하다가 끝났을 때 쾌감이 너무 좋아요. 합주 끝나고 뒤풀이 가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과 합주 하면서 재밌는 상황이 나오는 것도 행복하고요.”
“지금처럼 시험 기간과 공연 준비가 겹치면 너무 힘들죠. 근데 공연이 끝나고 되돌아보면 모두 미화돼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게 돼요. 메아리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걸요”. 기타를 치는 권태현 부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을 발전시키는 재미도 크다. 키보드를 맡은 강동원 회장은 “서로 다른 세션끼리 모여 곡 하나를 완성해내는 과정에서 갈수록 원곡과 비슷해지는 게 재밌다”고 했다. 베이스 담당인 이태영 부원은 “처음엔 공연의 뿌듯함이 좋았는데 점점 음악이 더 좋아진다. 몰랐던 장르의 음악도 해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최근 메아리는 서울대축제에서 최고의 밴드로 뽑히기도 했다.
동아리 역사가 워낙 역동적으로 변모한 데다, 코로나19까지 겪으면서 역사에 비해 선배들과 교류가 적은 점은 다소 아쉽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덕원(윤덕원 언론정보01-07) 동문이 음악잡지 ‘weiv’와 했던 인터뷰에서 메아리의 ‘과도기’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다. “98학번 대에 메아리에서 밴드 스타일의 창작곡을 내는 경향이 단추를 꿰고, 01, 02학번 때쯤 한 번 더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학교 노래패도 홍대 앞 씬의 영향을 받아 중창 중심에서 밴드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엄혹했던 시절 메아리에선 누군가 끌려갔을 때 빌미를 주지 않으려 같이 사진도 찍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그 비장함이 사그라든 후에도 메아리에서 태동한 뮤지션들은 ‘막막한 청춘’의 상을 노래했고, 여전히 음악에 진심인 후배들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50주년이 머지않은 메아리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다.
박수진 기자
▷유튜브에서 서울대 메아리 지난 공연 보기: https://www.youtube.com/@snume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