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7호 2024년 8월] 뉴스 모교소식
캠퍼스 자투리 땅 일궈 ‘작은 정원’ 만드는 재미
동아리 탐방 정원 조성 동아리 ‘피움’
캠퍼스 자투리 땅 일궈 ‘작은 정원’ 만드는 재미
동아리 탐방 정원 조성 동아리 ‘피움’
관악캠퍼스 220동 부근 100평 남짓한 자투리 공간에 조성된 피움의 텃밭.
선배들 방울토마토 모종 선물
밥상 오른 채소들 “달리 보여요”
관악캠퍼스 220동 부근 100평 남짓한 자투리 공간. 학내 흔한 ‘노는 땅’이던 이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기 시작했다. 잠잠했던 흙을 헤집고 씨앗이 눌러앉더니 후두둑 떨어진 땀방울을 먹고 자라났다. 눈길 한 번 못 받던 땅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정원과 텃밭이란 쓰임새를 찾았다. 정원 조성 동아리 ‘피움’이 일궈낸 변화다.
8월 2일 찾은 220동 피움 정원은 옥수수, 고추, 수박 같은 여름 작물과 허브류, 봉선화, 수레국화 등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었다. 새를 쫓기 위해 깡통으로 치장한 허수아비와 곡괭이며 삽 등의 농기구에 이곳이 학교임을 잠시 잊었다. 학생회관 동아리방에서 만난 김태은(식물생산과학22입) 회장, 김민성(수리과학23입)·정재훈(식물생산과학23입) 부원도 “가끔은 내가 학생인지, 농부인지 헷갈린다”며 웃었다.
“2015년 ‘글로벌 환경 경영’이란 환경 생태 수업에서 학교의 틈새 공간을 녹지로 개선하는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당시 220동 공간을 내주신 지속가능경영연구소에서 계속 학생들을 믿고 맡겨주셔서 동아리로 발전했죠. 학교 내 틈새 공간을 가꾸면서 동아리원들도 즐길 수 있는 작물을 심기 시작한게 지금의 모습이 됐어요.”(김태은)
피움은 주2회 정원과 텃밭을 가꾸는 정기활동과 행잉플랜트·잔디인형·포푸리 만들기 등 특별활동을 운영한다. 강요 없이 원하는 활동을 고를 수 있다. 한 해 100여 명 정도 활동하는데 올해는 120여 명이 들어왔다니 젊은 세대 식물 열풍이 실감난다. 50여 명의 정기활동 부원은 ‘정원부’와 ‘틈밭부’로 나눠 각각 화훼류와 채소류를 돌본다.
“봄에 심어 갓 수확했다”며 냉장고에서 꺼내온 손가락 당근이 제법 실했다. 식물을 잘 기르는 사람을 가리켜 ‘그린 핑거’라는데, 피움 부원들도 처음부터 능숙했던 건 아니다. 김민성 부원은 “지난해 당근 씨를 맨땅에 뿌렸다가 작황이 좋지 않았다. 올해는 반면교사 삼아서 텃밭 박스를 마련하고 그 안에서 좋은 흙에 심었더니 수율이 너무좋다”며 뿌듯해 했다.
정재훈 부원은 지난 봄 아찔한 경험을 했다. “상추 상태가 안 좋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해가 부족한가 싶어 옮겨 심어보고, 잡초가 너무 많나 싶어 뽑아 줬더니 일부라도 살려서 기분이 좋았죠.” 부모님께서 주말농장을 한다는 그는 “아무리 좋은 식물등도 햇빛만 못하더라. 최대한 자연적인 게 좋은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많이 키워보고 실패하면서 느는 것 같아요. 꿀팁도 찾아보고요. 애써 기른 식물들이 죽으면 속상하지만, 저희를 기다리는 다른 식물들이 있으니까 슬퍼할 시간도 없이 노력하게 돼요.”(김태은)
'피움' 부원들이 봄에 심어 최근 수확한 손가락 당근과 고추.
실로 건물 사이 조그만 땅에 쏟는 이들의 정성은 눈물겹다. 해의 움직임을 파악해 작물의 위치를 정하고, 올해 장마 전엔 부원들이 삽을 들고 직접 수로를 팠다. “땅은 보수력과 투수성이 중요한데, 우리 땅은 물을 내뿜는 성질이라 배수가 잘되는 편이다. 그래도 흙이 옮겨다니면 안 좋으니 수로를 냈다”는 김 회장의 설명. 덕분에 폭우에도 끄떡없었는데, 김민성 부원은 “수로를 만들기 전에 수박을 심어서 당도가 좀 낮을 것 같다”며 울상을 한다.
시험 치고, 과제 하느라 바빠도 당번을 정해 꼬박꼬박 물 주고 잡초 뽑고 일지를 쓴다. 봄여름만 반짝 열심인 것도 아니다. 가을엔 고구마 수확과 월동 배추 심기, 겨울엔 1년생 식물들을 뽑아내고 내년에 심을 작물에 맞춰 흙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연이 주는 위안과 깨달음은 육체의 힘듦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엔 땅에 심기만 하면 알아서 자라는 줄 알았어요. 딸기도 그냥 길러선 사먹는 크기가 안 나오더라고요. 도대체 선조들은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현대 농업의 힘을 느껴요.”(김민성) “전공이 식물이라 재배학, 채소학을 배우지만 개념만 아는 것과 실제로 필드에서 길러 보는 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학교 땅을 관리하니까 애착과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고요. 쉬고 싶을 때도 카페 대신 정원을 찾게 돼요.”(김태은) 정재훈 부원은 “공부하다가 쉬고 싶을 때 오히려 밭일이 좋은 핑곗거리”라며 “흙과 식물을 만지고 초록색을 보는 게 마음을 무척 편안하게 해준다”고 했다.
학생회관에서 정원까지 농기구 실은 수레를 ‘들들들’ 끌고 다니면 신기하다는 눈길도 받지만, 그 모습을 보고 찾아온 부원도 있다. 고된 밭일을 마치고 동아리방에서 배달 음식에 함께 키운 채소를 곁들여 먹는 재미는 이들만 느낄 수 있는 것. 밭에서 난 배추를 천일염에 절여 김장을 담근 적도 있다. 식물박람회며 식물원으로 나들이도 다닌다. 회비와 동아리 지원금, 학교에서 주는 친환경 학생활동 지원금으로 활동비를 충당한다.
운동부 선배는 장비를, 주류 동아리 선배는 해외에서 귀한 술을 사다 준다는데 이곳은 후배 사랑도 남다르다. “전전 회장님께서 방울토마토와 씹을 수 있는 작물 모종을 선물해 주셨어요. 정원에 있는 벤치도 선배님들이 두신 거고요. 한 선배님은 첫 월급 타시고 동아리 통장에 수십만원을 넣어 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김 회장은 “조만간 첫 홈커밍데이를 기획하고 있다. 후배들을 위해 작물 특성과 노하우를 담은 매뉴얼도 제작하려 한다”고 했다. 날로 급변하는 날씨 영향을 덜 받도록 작은 온실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수 스튜어트 스미스의 책 ‘정원의 쓸모’에선 “씨앗을 뿌리는 것은 가능성의 서사를 심는, 희망의 행위”라고 했다. 피움의 정원에도 미래가 기대되는 일이 가득하다. “지난 학기 200동 정원을 추가로 맡았어요. 갈대나 팜파스처럼 오래 볼 수 있는 조경 식물을 심어볼까 해요. 작년 가을엔 220동 정원에 매실나무 묘목 두 그루를 심었고요. 3년은 지나야 열매가 열린다고 해서 학수고대 중입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