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호 2024년 2월] 뉴스 모교소식
동아리 탐방: “글씨는 마음의 거울, 쓰다 보면 알게 되죠”
서울대 서예회
동아리 탐방 서울대 서예회
“글씨는 마음의 거울, 쓰다 보면 알게 되죠”
서실에서 글씨 쓰기를 연습 중인 서예회 부원들. 방학 중에도 나와서 서예를 공부한다. 사진=서울대 서예회
방학 때 특훈하며 연 2회 전시
올해 11월 60주년 회갑전
먹빛은 천년을 간다고 했다. 1964년 첫 획을 그은 모교 서예회도 먹빛을 따라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서예회가 특별한 한 해를 준비하고 있다.
1월 31일 찾은 학생회관 서예회 서실은 방학인데도 부원들로 가득했다. 넓다란 책상엔 연식을 알 수 없는 벼루들이 놓였고, 화선지를 펼치고 앉은 이들의 등 뒤로 붓글씨가 가득 드리워졌다. 20여 부원들은 학기 중 주 2회 서실에서 정기 연습을 하고, 방학 때도 서실에 나와 열심히 글씨를 공부하고 연습한다. 인터뷰에 응한 이상연(고고미술사학23입) 회장과 조상연(경제18입) 전 회장은 “서예가 어렵다는 생각을 버리고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 서예 학원도 줄어드는 요즘, 대부분의 신입 부원이 서예를 모르는 채 들어온다.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한 자라도 더 써본 선배들의 몫. 이상연 회장은 어릴 때부터 정석으로 서예를 배웠지만, 서예회에선 더 쉽고 재밌게 가르치려 노력한다고 했다. “정석대로라면 선 긋기만 2~3주 해야 하지만, 잘 한다면 2~3일에 끝나고 바로 한문 부수나 ‘가나다라마바사’ 같은 글자 기초 연습을 시키기도 해요. 그리고 전시회 출품을 목표로 작품 연습에 들어갑니다.”
매 학기 여는 서예전은 서예회 활동의 백미이자 초보들의 실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기회. 20글자 남짓 들어가는 반(半)전지에 서툴어도 하나의 작품을 쓸 수 있게 독려한다. 조상연 전 회장은 “작품을 쓰려면 한 글자 한 글자를 잘 쓰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연속적인 호흡으로 하나의 글을 써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연습하는 것”이라고 했다. 물기 먹어 구깃구깃했던 화선지가 배접을 거쳐 매끈해지기만 해도 그럴듯한 작품처럼 보여 어느새 자신감이 붙고, 본인 눈엔 부족한 부분이 쏙 들어오니 의욕도 생긴다.
옛 선배들은 구양순, 왕희지 등 비석문의 정석 글씨를 모은 ‘법첩’의 글씨를 따라 쓰는 임서에 주력하고, 국내 자료가 부족해 일본의 서예 책을 구해 공부했다. 지금은 자료도 풍부하고 글씨 내용도 다양해졌다. 처음에 한문 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 한글 궁체, 판본체 등 다양한 서체를 써보면서 필력을 기르고 글자를 조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 다음 마음에 드는 글자와 서체를 정해 작품을 연습하는데, 한문 고전부터 가요의 노랫말, 자작시, 심지어는 외국어도 등장한다.
서예 문화에 차츰 물들어 개인 낙관과 호(號)를 만든 부원도 여럿이다. 서법을 익히며 마음의 수양도 이뤄진다. “선배들이 왜 처음에 ‘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란 말을 꼭 쓰게 할까 의아했어요. 쓸 땐 제 마음이 흔들리는 걸 모르는데, 다 쓰고 나면 보이더라고요. 예쁘게 정돈된 글씨를 쓰고 싶어 고민하다 보면 차분하게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인재(仁齋)’ 조상연 전 회장의 말이다. ‘석헌(石軒)’ 이상연 회장은 “붓 잡는 자세가 ‘편봉’으로 기울지 않고 항상 붓대를 수직으로 유지하는 ‘중봉’이 중요하다. 멋을 부리려 한자 획끝을 과하게 삐치는 것도 자제시킨다. 자유분방도 기초를 쌓은 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법만큼은 제대로 가르친다”고 했다.
매 학기 여는 서예전 전시장에서 서예회 부원들. 사진=서울대 서예회
연초부터 서예회는 분주하다. 이상연 회장은 “5월 신입부원 위주 전시에 이어 11월 회갑전을 계획하고 있다. 졸업하신 선배님들과 모교 교수님들, 그간 교류해온 외부 서예 동호회의 찬조작품까지 풍성한 전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전시 마지막날은 홈커밍데이로 선배들과 만나는 것이 관례. 평소에도 네이버 밴드에서 200여 명의 선배들과 소통하고, 지도교수(남동신 국사학과 교수) 또한 서예회 출신이다. 오래도록 붓을 놓지 않는 선배들은 서예가 평생 가는 취미임을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사회에 나가면 전시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데 동아리에서 꾸준히 전시를 열고 작품을 걸 수 있으니 너무 감사하죠. 전시를 앞두고 서실에 모여 같이 밤새워 글씨를 쓰는 것도 좋은 추억이고요. 지금까지 95번의 전시를 했으니, 선배님들도 똑같은 추억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요?”(조상연)
“선배님들껜 50주년보다도 한 갑자가 돌았다는 60주년의 의미가 크신 것 같아요. 11월 전시에 대비해 지금부터 실력을 기르라고 말씀하시죠. 기대가 크시지만 부담되진 않아요. 덕분에 저희가 더 성장하고 적극적으로 임하게 됐으니까요. 11월 회갑전은 서울대 서예인의 잔치 같은 자리가 될 테니 많이 와 주세요.”(이상연)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