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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호 2024년 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한국인 생존․핵균형 대담한 전략 절실하다

이우탁 연합뉴스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한국인 생존․핵균형 대담한 전략 절실하다



이우탁
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연초부터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충격을 몰고 왔다. 시작은 저명한 북한 연구자들인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가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연초 몰아닥친 ‘한반도 전쟁 위기설’
이들은 “한반도 상황이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험하다”며,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측 협상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마저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가세했다.

특히 북한의 움직임이 이런 위기론을 더욱 증폭시켰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하더니 1월 10일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는 등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은 행동에도 나섰다. 1월 중순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와 수중 핵무기 해일, 순항미사일을 발사했다.

이후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전문가들 사이의 논쟁도 가열됐다. 한국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전면전 가능성을 일축했다. 실제로 전면전을 하기에는 북한의 태세가 미비하고, 핵도발을 잘못하면 한반도는 공멸이고, 북한 체제도 종말을 맞는다. 하지만 우발적인 국지적 충돌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24년은 한국에는 총선이, 미국에선 대선이 진행되는 선거의 해다. 북한이 이를 간과할 리 없을 것이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선제적 공격이 가능한 핵교리를 천명했다. 이른바 ‘핵보유 전략국가’를 가능하게 한 구조적 배경은 무엇일까. 필자는 미중패권경쟁이라는 국제정치의 구조를 북핵 문제에 접목해보았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라는 3국의 전략적 삼각관계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보유하면서 한반도 위협세력으로 존재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다.

2019년 2월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상기해보자. 한때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톱다운 방식’의 화려한 외교 쇼를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비핵화를 맞바꾸자는 도박과도 같은 협상에 나섰다.

미중 패권경쟁과 북‘핵보유 전략국가’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제의를 거부했다. 왜 그랬을까. 중국과의 패권경쟁에 돌입한 미국에게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은 이제 최대관심사가 아니다. 과거 1, 2차 북핵 위기 때와 달라진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동결과 인센티브 제공이라는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 ‘하노이 노딜’에서 보듯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는 대신 중국 때리기에 전념했다.

그런 미국에 맞서 중국도 전략적 가치가 커진 북한 보호에 주력한다. 북중 동맹이 갈수록 강화되는 이유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을 확인한 이상 미중 관계가 절대 다시 과거와 같은 협력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김정은은 알게 됐다. 특히 북한에게 ‘제재의 사슬’에서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가하려 해도 공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북핵 이슈는 중국에게 핵비확산보다는 세력균형 이슈로 전환됐고, 이것이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것이다.

북 핵보유국화와 한반도 핵균형 전략
북한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존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한반도 내 핵균형이 흔들리게 됐다. 북한의 현상변경 시도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대담한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한반도형 핵균형’ 이라는 개념과 정책을 제안한다. 이 방안은 북한이 미중 전략경쟁의 틈새를 파고든 것처럼 한국도 미국과 중국 관계의 변화를 잘 활용하는 안보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핵에는 핵으로’라는 관점에서 북한의 핵무력 수준에 비례해 절대 부족함이 없는 수준의 억제력이 구축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 상황에 맞는 ‘맞춤형 핵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 방안이 미국의 확장억제의 강화가 됐든, 전술핵 재배치가 됐든, 한국인의 생존과 안전을 담보할 ‘신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북한이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고, 핵심 목표는 한반도에서 핵전쟁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사적으로 보면 미국이 한국전쟁 이후 전술핵을 한반도 배치했던 1957년부터 전술핵을 철수했던 1991년이라는 30여 년간의 역사,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과 이를 저지하려 했던 지난 3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북한의 핵무력 완성(2017년) 이후 향후 30년의 시간을 다시 한반도 비핵화로 돌아가는 목표를 실현하는 기간으로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