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호 2023년 10월] 뉴스 단대 및 기과 소식
“돈으로 애 낳게 할 수 없어…사회가 함께 기른다는 신뢰 줘야”
김영미 (사회복지97-01)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
“돈으로 애 낳게 할 수 없어…사회가 함께 기른다는 신뢰 줘야”
김영미 (사회복지97-01)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인구 감소, 교육·국방 등 연쇄 타격
정부·기업, 합심․ 인프라 구축해야
“미국의 리서치 회사에서 선진 1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당신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하는 게 무엇이냐’ 묻는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다 가족을 1순위로 꼽았는데,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가 1순위였어요. 2순위가 건강, 3순위가 가족이었죠. 친구는 5위 안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가족은 물론 공동체에 대한 가치 인식이 매우 저조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러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단순히 돈 얼마 준다고 해서 결혼하고 출산하고 그러진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관악경제인회가 10월 5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제3회 조찬포럼을 개최했다. 이부섭(화학공학56-60) 회장, 이희범(전자공학67-71) 명예회장, 서병륜(농공69-73) 수석부회장, 조완규(생물48-52) 전 모교 총장 등 6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 김영미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초저출생, 초고령시대 인구정책이 나아갈 길’을 주제로 연단에 올랐다.
김 부위원장은 오랫동안 학계에 몸담으며 저출산·돌봄·가족 문제를 연구해온 사회복지 전문가다. 수조 원대 재정이 투입되는 저출산·고령화 정책의 실효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기존 사업들을 정책 실수요자인 청년층의 눈높이에서 평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2008년부터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는 2005년 설립돼 2006년부터 예산이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2조원대에서 시작해 작년엔 51조 7000여억원이 투입됐죠. 16년 동안 280조가 투입됐는데 합계출산율은 2006년 1.13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떨어졌다는 수준을 넘어 급락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많은 돈을 어디에 썼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요. 저출산·고령화 사회 기본 계획은 5년 단위로 수립되는데요. 약 10년 전부터 청년·교육·주거 지원 같은 데도 관련 예산이 쓰이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구조적 문제가 복합돼 저출산 문제가 나타나긴 하지만, 저출산 대책 안에 너무 많은 정책이 들어가 일으키는 착시 효과도 무시할 수 없어요.”
실제로 아동이 있는 가족을 지원하는 데 직접 쓰인 정부 지출은 2019년 기준 GDP 대비 1.56%. OECD 국가 평균 2.3%에 못 미친다. 국가의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은 2.1명으로 우리나라는 1983년 이미 저출산 단계에 접어들었다. 2001년엔 1.31명으로 초저출산 단계, 2017년엔 1.05명으로 극저출산 단계에 진입해 현재 3차 인구절벽 상황을 겪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9000명으로 40년 전 100만명에서 딱 4분의 1 수준. 김 부위원장은 교육·국방·근로·납세 등 국민의 4대 의무가 순차적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5년여 동안 어린이집 9000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지방은 물론 서울 소재 초등학교의 폐교도 나타났고요. 2020년 789만명인 학령인구가 2040년엔 447만명, 2070년엔 328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연쇄적으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국방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안 그래도 적은 인구 중에서 남성만 의무를 지니까요. 군 첨단화를 통해 방안을 모색하곤 있지만 대만, 노르웨이 같은 여성 징병제를 시행한 나라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생산인구 감소는 말할 것도 없고요. 연금 개혁도 무척 지지부진한데 당장은 건강보험이 더 큰 문제입니다.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가 더 빨라지면서 65세 이상 진료비 비중이 50%를 돌파했어요. 사회보장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세대 간 갈등이 더욱 극심해질 것입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는 지방에서 더 심각하다. 전라남도의 경우 전체 인구가 170만명 밖에 안 되는 상황. 최근 5년 사이 청년 인구가 급격하게 수도권으로 이탈하면서 사회 인프라 자체가 붕괴, 출산을 하려면 서울로 병원을 찾아 가야 한다. 일자리 또한 수도권에 1000대 기업의 86.9%가 집중돼 있다. 지방소멸은 국가 전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수도권도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지방의 위기는 서울의 위기이기도 한 것. 청년들 사이에선 ‘지방에는 먹이가 없고, 서울에는 둥지가 없다’는 말이 회자된다.
“잘 아시다시피 서울 집값이 무척 비쌉니다. 지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요. 그러나 일자리는 물론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도 부족하다 보니 청년들이 지방에 내려가 살 엄두를 못 냅니다. 정부가 나서 교육·의료·돌봄·주거 등 인프라를 구축해 물꼬를 터주고,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긴밀한 협력이 이뤄져야 해요. 아이 낳을 때마다 1억씩 준다고 하면 애 낳을까요? 우리 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런 신뢰를 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인식과 문화의 대전환이 절실하죠. 이러한 대전환에 동문 여러분들께서 관심을 갖고 함께 애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관악경제인회는 이날 참석한 동문 모두에게 김 부위원장의 추천도서 ‘인구 위기, 스웨덴 출산율 대반전을 이끈 뮈르달 부부의 인구 문제 해법’을 증정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