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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023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고(高)출산 시대의 추억


고(高)출산 시대의 추억




이지영
약학89-93
중앙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설마 하는 새 무너진 출산율
코앞의 위기 먼 일로 봐서야


‘무서운 핵폭발, 더 무서운 인구폭발’ 대학에 다니는 동안 매일 한강대교를 오가며 봤던 표어다. 다리 옆 무슨 광고탑 같은 곳에 붙어있던 이 문구를 하루 두 차례씩 보면서 다녔다. 저출산이 무서울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한, 태평성대였다.

명실상부 초초저출산 시대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 세계 최저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출산율이 1.3 미만이면 초저출산으로 분류한다는데,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구 소멸 수준의 수치다.

1998년 첫 출산 때는 물론이고 2001년 둘째를 낳았을 때도 ‘출산 장려’란 말은 세상에 없었다. 이제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지는 ‘불임수술’ 비용이 거의 공짜였고, ‘복원수술’엔 의료보험 혜택을 주지 않았다. 육아휴직은 공무원·교사만 쓰는 (줄 알았던) 제도였다. 한 친구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으며 회사를 그만뒀다. 정기적으로 호르몬 주사 맞는 일을 직장생활과 병행할 수 없어서였다. 당시 시험관 시술은 한 번에 200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두 차례 실패 후 세 번째 시술 끝에 엄마가 된 친구는 “진짜 비싼 아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1억 들일 각오하고 시작했다”고 털어놓으면서다.

맞벌이 가정은 늘어났지만 보육시설은 태부족이었다. 둘째를 낳기 전 산부인과 분만대기실에 누워 있었을 때다.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이 진통과 진통 사이 짧은 휴지기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이집은 정하셨어요?” “아니요, 아기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신청이 가능하다고 해서요.” “출생신고 하자마자 대기자로 올려두세요.” 애 맡길 곳 걱정에 산고도 잊은 듯했다.

저출산의 여파는 전방위적이다. 20여 년 전 그토록 문턱이 높았던 어린이집은 이제 정원을 채우지 못해 줄폐업으로 내몰렸다. 어린이집을 노인 요양시설로 리모델링 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도 등장했다. 전국 147개의 초등학교가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했고, 병역 대상자가 급감해 전방 철책선 경계 근무에 무인 시스템 도입을 추진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이미 1983년부터 인구 유지 마지노선인 2.1명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는 1996년까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을 이어갔다. 간단한 산수 한 번이면 ‘인구폭발’이나 ‘초만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자식 욕심은 인간의 본능이라 믿는 믿음이 컸다. 저출산 대책이 나온 건 출산율이 1.09명으로 떨어진 2005년부터다. 설마 하는 사이 무너져내리는 게 출산율뿐일까. 곳곳에 똬리를 튼 혐오와 차별,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 코 앞의 위기를 우린 아직도 먼 미래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고(高)출산(으로 믿었던) 시대를 돌아보며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