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5호 2022년 10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나’를 의심해 보는 ‘마음의 여유’

방문신 SBS 문화재단 사무처장·본지 논설위원

‘나’를 의심해 보는‘마음의 여유’



방문신
경영82-89
SBS 문화재단 사무처장·본지 논설위원



은퇴하는 친구들이 부쩍 늘었다. 퇴직자들과의 만남도 많아졌다. 일 잘했던 사람, 호기 넘쳤던 사람, 배려 많았던 사람 등 좋은 사람이 많지만 요즘 특히 끌리는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과거의 신화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때는 생각이 이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논리에 심취했었는데 허점을 못 봤던 것 같다”는 식의 성찰적 대화가 많은 사람들이다. 생각의 변화와 유연성이 느껴진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까지 느껴져 더 공감됐다. 몇 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단어, ‘확증편향’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스스로를 돌이켜 본 뒤 관점을 바꿔 보는 것인데 듣는 나에게는 울림 있게 다가왔다.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IT시대, 스마트폰을 자주 바꾸는 사람도 유독 생각만큼은 바꾸기 어렵다. 때론 고통스럽다.

인간의 뇌는 낯선 것을 생존위협 요인으로 간주해 일단 거부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천동설이 정설이었던 시절, 지동설을 접한 사람들이 새 진실에 ‘유레카’라며 만세를 불렀을까? 불편해 하고 거부했을 것이다.

머릿속에 깊이 박힌 생각을 바꾸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설령 생각을 바꿀 실력을 갖췄어도 ‘내가 좀 안다’는 오만이 있으면 불가능하다. 실력과 열린 마음을 다 갖춘 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인류 역사는 이런 ‘생각의 바뀜’이 만들어낸 진화의 결과물이다. 과학이 그렇다. 19세기에는 돌턴의 원자론이 혁명이었지만 그 뒤 전자, 양성자, 중성자 발견을 거쳐 ‘쿼크’까지 진화를 이어왔다. 새로운 발견 앞에서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 과학의 위대함이다. 이와 반대로 세상은 달라지고 팩트가 바뀌었는데도 과거 믿음에 집착하는 사례도 적잖다. 종교와 정치의 ‘근본주의자’들이 이에 해당될 듯하다.

한국 정치는 어떨까? 갈등 해결은커녕 갈등을 부추기는 진원지가 돼 있다. 과거의 미신을 신념으로 착각하는 현상도 심해졌다. 말꼬리 잡기 싸움이 정치의 모든 게 돼 버렸다. 작금의 정치판이 1년상(喪)이냐 3년상이냐로 다투었던 조선 당쟁사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본질은 같아 보인다. 세상은 계속 바뀌는데 우리는 제대로 진화하고 있는지 정치인 스스로 의심해 봤으면 좋겠다. 잠시나마 나를 의심해 보는 것, 그것이 ‘마음의 여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