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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22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방시혁의 ‘꿈’ 허준이의 ‘목표’


방시혁의 ‘꿈’ 허준이의 ‘목표’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후기 졸업식 축사가 화제였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올해 수상자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위로를 얻었다며 축사 전문을 공유하는 이들이 많았다. 내용은 물론, 성공한 선배의 과시 섞인 훈계와 거리가 먼 이야기 방식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병원의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정신 팔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대목에 특히 눈이 갔다. 그가 차례로 언급한 취업, 창업, 결혼,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는 현대적 삶이 운명처럼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그 회로화된 삶에 갇힌 개인들은 정해진 행로에서 탈선하지 않도록 조바심 내고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허 교수는 출발부터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었다. 서울대 물리학과 3학년 때 그는 5과목 가운데 4과목에서 F 학점을 받았다. 그의 말마따나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인 대학 생활이었던 것. 그가 정해진 레일을 따라 남들 다 가는 통상적인 경로를 걸었어도 과연 오늘의 위치에 있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목표 이데올로기’가 만연해 있다. 미래에 대한 꿈이 확실하고, 목표가 분명해야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 ‘꿈은 이뤄진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물론 유용하고 좋은 얘기다.

하지만 ‘뚜렷한 목표 설정과 그곳을 향한 일로매진’ 이전에 그 꿈과 목표의 실체가 뭔지부터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 꿈이란 게 자신의 고유한 꿈인가, 아니면 사회가 선망하는 타인의 꿈인가. 자신의 진실한 욕망이 빠진 사회적 기준, 타인의 시선으로 재단된 목표를 향해 밤잠 설치는 일은 얼마나 헛되고 허무하고 부질없는가. ‘목표 이데올로기’에 대한 허 교수의 거부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뭘 해야겠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목표가 구체적일수록 마음이 경직된다”며 “오히려 목표를 정확히 두지 않으면 지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을 일군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도 화제를 모은 3년 전 졸업식 축사에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다.” 그 역시 구체적 목표의 무용함을 일찍 터득했던 듯싶다.

예외적 성취를 이룬 허준이와 방시혁은 그 탁월함뿐만이 아니라 진솔하고 담백한 체험담으로도 서울대를 넘어 우리 사회 다양한 구성원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 이런 서울대인들의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