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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2022년 8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노비’ 전영애 명예교수의 몰입적 생활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관악춘추
 
‘노비’ 전영애 명예교수의 몰입적 생활


전영기
정치80-84
시사저널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전영애 동문(모교 독문과 명예교수)은 71세인데 경기도 여주 3000여 평쯤 되는 아름다운 여백서원(如白書院)이란 곳에서 노비(奴婢)처럼 살고 있다. 세계적인 괴테 연구자로 유명하지만 그의 생활은 촌부(村婦)와 같이 하루종일 여름 풀을 뽑거나 한옥 도서관을 청소하고 관리할 뿐 아니라 잠은 언제 자는지도 깨는지도 모르게 1만5000통에 이르는 괴테의 편지를 선별, 번역하는 일로 쉬임이 없다(아니 전 동문에겐 그 일들이 쉬는 것만큼 기분좋고 행복하게 보였다). 전영애 동문은 이미 한국 번역의 최고봉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괴테의 번역서와 연구서를 펴낸 바 있다. 

‘노비’는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육체적 일을 해야하는 처지를 빗대어 전영애 교수가 스스로 붙인 별명이다. 전영애 동문은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의 소유자다. 지난 20년간 본인과 주변 상황을 동화 속 인물같이 세월이 흘러도 늙거나 낡지 않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필자는 이번 휴가 때 신륵사를 볼 양으로 여주에 놀러갔다 우연히 여백서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영애 동문과 두어 시간을 보내면서 여백서원을 그토록 밝고 따뜻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동화의 고향으로 만들어낸 비밀은 그의 ‘몰입적 생활’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몰입의 세계에선 시간의 흐름이 멈춘다. 내면 속에 온전한 자아가 활짝 꽃피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 전면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있지 않은 사람들은 흔적을 탐구하여 결국 그의 영혼을 만나고 마는 게 몰입적 생활양식이다. 

전영애 동문은 괴테의 영원한 청춘에 몰입하여 그것을 200년이 지난 현재의 한국 땅 여주에서 재생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엔 수십명의 괴테 흠모가 혹은 인문학 여행객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여 책 토론도 하고 노래나 연극을 하거나 밤을 새며 별똥 구경을 하기도 한다.

전영애 동문의 몰입 인생 시즌2는 여백서원 인근 산기슭에 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것과 같은 괴테의 생활 공간을 건축하는 것이다. 여주에 괴테 하우스를 지어 괴테의 숨결을 세계인이 느끼도록 하고 싶다는 꿈이다. 전영애 동문은 돈이 없다. 그래도 지금까지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앞으로도 뜻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있다. 

‘현대 한국에서 왜 괴테인가’라는 필자의 돌발적인 질문에 전영애 명예교수는 이렇게 답변했다. “뜻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클 수 있나. 그런 큰 사람은 어떻게 자기를 키웠나. 그 두 가지를 나는 여주 괴테 하우스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