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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호 2022년 5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거품붕괴의 데자뷰

박종성 경향신문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거품붕괴의 데자뷰


박종성
서양사82-86
경향신문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불꽃은 꺼지기 전이 가장 밝다. 30여 년 전 일본 경제의 버블 때도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 일본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세계 1위로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본의 부동산과 주식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저금리는 버블을 부채질했다. 기업이든 가계든 돈을 빌려 부동산을 샀고 다시 부동산을 담보로 부채를 일으켜 주식을 샀다. 부동산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은행은 부동산 담보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주었다. 모든 자산이 오를 것이라는 무지갯빛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1985년 미국과의 플라자합의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미국과 일본은 일본 엔화 가치를 대폭 절상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무역적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절하한 조치다. 여기에 자산 시장의 거품을 뒤늦게 감지한 일본 정부가 급격한 금리인상과 대출제한에 나섰다. 거품은 터졌다. 가계와 기업은 대출을 갚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을 던졌다. 그러나 모두가 투매에 나선 상황에 이를 받아줄 매수 주체는 없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폭락했다.

그후 일본 경제는 30여 년 간 침체의 늪에 빠졌다. 2000년대 들어 총리에 오른 아베 신조는 돈풀기에 나섰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는 시장에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경제는 살아날 듯한 기미만 보일 뿐이었다. 어려운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일본인들은 디플레이션에 익숙해졌다. 거품붕괴를 겪은 세대는 생활도 바뀌었다. 돈을 쓰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사회를 보는 창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의 인기 검색어다. 한국에서는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로또로 대박 수익내는 비법이 오른다. ‘인생을 바꿀 종목을 찾아준다’는 식이다. 일본은 다르다.

‘어떻게 절약하며 사는가’와 관련된 것들이다. 서점가에서도 ‘공격적인 절약’, ‘구매하지 않는 생활’, ‘연봉 100만엔(1000만원)의 풍부한 절약생활술’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수십 년간 디플레이션의 결과다.

한국은 버블의 끝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버블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서서히 꺼지는 단계다. 주식시장은 이미 위축됐다. 많은 가계들이 부동산 버블에 뛰어들었다. 이번에 매수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두려움(FOMO)에서다. 가능한 대출을 모두 끌어들여 아파트나 빌라를 샀다. 국가들이 금리인상에 나서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영끌’은 절벽에 놓였다. 이젠 고통의 시간이다. 일본과 같은 전철이 되풀이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