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9호 2022년 4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정치적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은 정치

관악춘추 신예리 논설위원
관악춘추
 
‘정치적 올바름’과 올바르지 않은 정치
 


신예리
영문87-91
JTBC 보도제작국장
본지 논설위원
 
톱스타 윌 스미스의 손찌검과 영화 ‘코다(CODA)’의 3관왕 달성.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뜨겁게 달군 두 사건은 제각기 차별과 혐오에 대한 생각거리를 일깨웠다. 우선 사상 최초로 농인(聾人) 배우들이 주축이 돼 작품상과 각색상, 남우조연상까지 꿰찬 ‘코다’는 장애인 가족이 마주한 일상의 장벽이 얼마나 높고 큰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런가 하면 스미스는 자기 아내의 삭발을 두고 농담한 코미디언의 뺨을 후려쳤다. 전 세계로 생중계된 폭력 행사 이후 맹비난이 쏟아진 가운데 다른 얘기도 흘러나온다. 애초에 스미스 아내의 머리 모양을 코미디 소재로 삼은 게 부적절했다는 거다. 흑인이자 배우인 그녀가 오랫동안 탈모에 따른 고통을 토로해왔기 때문이다. 백인과 다른 모발 특성 탓에 흑인 여성의 탈모 비율이 유독 높다고 하니 그가 웃자고 던진 말이 실은 소수자에 대한 심각한 조롱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위반이다, 인종·성별·장애 등에 대한 일체의 차별적 표현을 삼가자는 사회 운동 말이다. 다민족·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비롯됐는데 우리 사회에도 뿌리내린 지 오래다. 무심코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기사에 썼다가 장애인 독자의 항의 전화에 정신이 번쩍 났던 게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런데 종주국인 미국에도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인권도 좋지만 남들 눈치 보느라 말도 맘대로 못 하니 답답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정치적 이득을 취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정치적 올바름은 개나 줘버려’ 식의 막가는 언행이 2016년 대선 승리의 주요 요인이란 게 정설로 통한다.

그럼 우린 어떨까. 올해 대선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윤석열 당선인이 장애인 운동가 앞에서 ‘정상인’ 운운했던 순간이다.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란 지적을 받고 곧장 정정하긴 했지만 어색해 하는 표정이 읽혔다. 이걸 보며 장애인 인권엔 공감해도 비장애인이란 말까진 과하다고 느낀 이들이 분명 있었을 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 단체에 ‘비문명적’ 같은 표현을 쓴 걸 비판 받자 왜 안 되느냐고 강변한 것도 그런 부류를 겨냥한 계산일 수 있다.

영화 ‘코다’에서 농인 부모는 청인(聽人)인 딸의 도움 없이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꿈을 향해 나가려는 딸의 발목을 붙잡아야 할 기로에 놓인다. 현실에서도 그같은 구조적 차별이 여전한 것이 ‘정치적 올바름’의 존재 이유다. 이 뻔한 사실을 설마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걸까. 어느 쪽이든 참 올바르지 않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