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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호 2022년 3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헌법 제87조를 아시나요

김광덕 서울경제신문 논설실장·본지 논설위원


헌법 제87조를 아시나요


김광덕
정치82-86
서울경제신문 논설실장·본지 논설위원


초박빙 승부의 20대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그래도 우리 사회는 아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대한민국이 진짜 봄을 맞고 ‘글로벌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을 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밥은 저서를 통해 “다가오는 도전은 지금까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클 것”이라며 ‘위대한 리셋’을 역설했다. ‘한국병(病)’을 도려내는 대수술은 근본 다지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등 헌법정신의 세 기둥을 바로 세워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신뢰 회복을 통한 국민 통합과 협치이다.

5월에 출범하는 새 정부는 흔들리는 헌법가치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까. 첫 시험대는 총리 및 장관 인사다. 헌법 86조 2항은 ‘국무총리의 행정각부 통할권’을 규정했다. 이어 헌법 87조에는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1항)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3항) 등의 규정이 있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 권한이 실제로 보장됐다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와 역대 대통령의 불행은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책임 총리’ 규정을 제대로 실천해온 정부는 없었다. 대부분 대통령은 총리를 불러 종이에 적힌 장관 명단을 읽어준 뒤 동의를 받아내는 요식 절차를 거쳤을 뿐이다. 다만 총리를 두 번 지낸 고 건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 말기에 총리 제의를 받고 ‘장관 해임 제청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고건 회고록’에 따르면 고 전 총리는 1997년 3월 김 전 대통령과의 개각 협의 과정에서 안우만 법무부 장관 등 2명의 장관 교체를 관철시켰다. 2003년 7월 노무현 정부가 허상만 농림부 장관을 임명할 때 고 전 총리는 이례적으로 국무위원 제청을 서면으로 했다. 전문가들은 “DJP 공동정부에서 김종필 총리가 일정 지분에 대해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한 것을 제외하면 고 전 총리만큼 내각 인선에 관여한 경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헌법 조항은 참으로 많다. 헌법 57조는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조항만 제대로 지켜도 여야의 선심 예산 경쟁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우리 정치인들은 전문과 130조, 부칙으로 구성된 헌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헌법을 자주 읽고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가 잘못된 인터체인지로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