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7호 2022년 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삶의 마무리, 생각해 보셨나요

김영희 한겨레 선임기자

 

삶의 마무리, 생각해 보셨나요



김영희
고고미술사88-92
한겨레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나도 그것 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국가기관에 등록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불쑥 말했다. 당시엔 코로나19 걱정도 있었지만, 나이 많은 부모에게 죽음을 연상시키는 일인 듯싶어 망설였다. 몇달 뒤 생각지 못했던 엄마와의 이별을 맞고 나니 자꾸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때 손을 잡고 함께 갔다면, 스스로 삶의 마무리를 결정해뒀다는 생각에 엄마가 조금은 더 편하지 않았을까. 

임종기 연명치료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한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이번 달 도입 4년을 맞았다. 그 중에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회복 불가능한 임종과정일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처럼 시간만 연장하는 시술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자신이 미리 문서로 밝혀둘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국가연명의료기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재 등록 건수는 118만6697건이다. 19살 이상 성인이 대상이니 아직 많은 숫자라 하긴 어렵다. 특히 남성 등록자는 여성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1993년부터 통일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한 미국의 경우 작성률이 36.7%에 이른다. 상담비에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며 급증했는데, 작성 상담의 절반 가까이가 건강검진 때 이뤄진다고 한다. 생각하고 들어볼 기회가 많은 사회에서 실천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의사 아툴 가완디가 쓴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주민들이 생의 마지막 시기 들이는 병원비나 입원 날짜가 미국 평균의 절반인 위스콘신주 라크로스 사례가 나온다. 이곳은 일찍부터 삶의 마지막 시기 원하는 바를 대화하고 문서화 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가완디는 “설문지 자체가 아니라 중환자실에 가기 전 여러 번 환자와 가족들이 이야기하고 생각을 해봤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연명치료 문제 외에도 선택이 필요한 지점은 무수하다. ‘웰다잉 문화운동’ 대표로 또 다른 삶을 시작한 5선 출신 원혜영 전 의원은 “재산을 어떻게 정리할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장기기증을 할지, 유산기부를 할지, 말기 상태에 대비해 후견인을 정할지, 모두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병원이, 가족이, 법이 결정하게 되고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삶의 주인으로서 건강, 재산, 사후 절차 등 삶의 마무리에 관한 일들을 내가 결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웰다잉 운동”이라고 말한다. 

전 국민의 20%가 65살 이상인 초고령사회가 3~4년 앞이다. ‘웰다잉’이 재산 많거나 성공한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터. 서랍 깊숙이 넣어놨던 장기기증 안내 팸플릿을 나부터 다시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