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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2022년 1월] 뉴스 기획

호랑이 보전하고, 화폭에 그리고, 캐릭터로 만들고…

호랑이를 연구하는 사람들
호랑이해 기획

호랑이 보전하고, 화폭에 그리고, 캐릭터로 만들고…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의 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돌이’였고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수호랑’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때때로 사람을 해하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온다고 믿었던 신령스러운 존재다. 설화와 고전문학 속엔 곶감에 겁먹고 달아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똥물을 뒤집어쓴 선비를 근엄하게 꾸짖는 모습도 있다. 우리 민족의 유별난 호랑이 사랑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호랑이를 그리고 또 연구하는 모교 교수와 동문들을 만났다.


“미국하면 흰머리수리, 중국하면 판다, 한반도는 호랑이죠”
 
이  항  모교 수의대 교수
 

모교 수의학과 교수이자 한국범보전기금(KTLCF) 대표인 이 항 교수는 한반도에 야생 호랑이를 복원하는 사업과 함께 인류와 호랑이의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 KTLCF는 한국 범, 즉 한국 호랑이와 한국 표범의 보전을 돕기 위해 2004년 결성된 소규모 시민 모임으로 2011년엔 환경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등록, 단순히 후원금을 모아 러시아 소재 동물보호재단에 보내는 수준을 넘어 한국 범 보전을 위한 교육·캠페인·학술 활동 등을 펼쳐가고 있다. 작년 12월 27일 이 항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 민족의 기저 의식엔 샤머니즘적 토테미즘적 무속 신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 속에서 호랑이는 가장 신령스러운 존재였고요. 불교시대 때까지만 해도 사찰엔 산신각이 있었고 호랑이 그림이 걸렸어요. 외래 종교와 토착 신앙이 어느 정도 병존한 거죠. 민화로 그려져 문화적 명맥을 이어오긴 했지만, 유교시대가 도래하면서 호랑이 개체 수가 크게 줄었습니다. 인간 본위의 유교 특성상 호랑이는 쓸모보다 위험이 훨씬 큰 맹수였거든요.”

조선시대엔 호랑이 잡는 특수부대인 ‘착호갑사(捉虎甲士)’가 조직됐고 일제강점기엔 ‘해수구제사업’이 전개됐다. 호랑이와 표범을 해수(害獸), 즉 인간을 해치는 짐승으로 규정하고 학살에 나선 것. 조선시대엔 활과 창으로 잡았지만, 일제강점기엔 신식 무기인 총이 등장했다. 사냥 속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져 한반도에 남아있던 호랑이들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멸종한 줄 알았던 한국 호랑이가 러시아 극동 지방 아무르 강 유역에서 발견됐다. 흔히 ‘시베리아 호랑이’라고 불리지만 ‘아무르 호랑이’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일본 도시샤대학 박물관에서 한국 호랑이의 표본을 찾아 뼛가루를 조금 얻어왔습니다. 아무르 호랑이의 DNA와 비교해보니 100% 일치했죠. 한국 호랑이의 후손인 아무르 호랑이가 한반도 내 서식에 성공한다면 한국 호랑이의 한반도 복원이 실현되는 겁니다. 다 자란 수컷은 반드시 독립해야 하고, 수천 킬로미터를 혼자 이동할 뿐 아니라 헤엄도 잘 치기 때문에 아무르 강 유역의 호랑이 개체 수가 늘면 중국을 거쳐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유입될 거예요.”

이 항 교수는 호랑이 복원에 따른 인명 피해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호랑이가 마구잡이로 사람을 공격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본래 예민하고 겁이 많아 되도록 사람을 피하는데, 일제강점기 학살을 경험하면서 이런 습성이 더 강해졌다고. 실제로 호랑이를 추적하고 있는 러시아 연구진들은 호랑이의 흔적을 쉽게 찾아도 숨거나 도망쳐 평생 한두 번조차 보기 힘들다고 전한다. 산과 들 곳곳에 주택이 들어서고 전국의 산에 등산로가 개척된 남한엔 호랑이가 살 만한 땅이 없다. 북한의 백두산과 개마고원이 서식지로 적당하다.

“훗날 남북 교류가 활성화돼 백두산 일대가 관광자원으로 개발되면 한국 호랑이는 영영 돌아올 곳을 잃게 됩니다. 어쩌면 시간이 많지 않아요. 미국 하면 흰머리수리, 중국 하면 판다를 떠올리는 것처럼, 상징 동물은 국가 브랜드로서 엄청난 가치를 띱니다. 호랑이의 역동성은 우리 민족의 역동성과 딱 맞아떨어지는데 올림픽 때나 근근이 돌아볼 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진 않아요. 임인년 지나고 다음 또 다음 해가 오더라도 우리 호랑이에 대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나경태 기자



타블로 첫 솔로 앨범에 호랑이 그린 게 계기
 
김남표 화가


“‘호랑이 작가’요? 썩 좋아하진 않아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작가에게 수식어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10년 넘게 호랑이를 그려온 김남표(서양화91-98) 동문도 그런 눈치였다. 그럼에도 김 동문의 작품세계를 말할 때 호랑이가 빠질 수 없다. ‘Instant Landscape(순간적 풍경)’라는 제목으로 수 년간 그려온 시리즈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자연과 문명 등 이질적인 재료들이 뒤섞여 초현실적 산수화를 이룬다. 국내외에서 많은 감상자를 매료시킨 작품들의 중심에 실존 동물이면서도 미지의 동물이 되어버린 존재, 호랑이가 있다.

‘김남표의 호랑이’가 탄생한 계기는 의외다. 2011년 가수 타블로가 첫 솔로앨범 표지를 의뢰해 왔다. 딸이 백호띠니, 백호를 그려 달라 했다. 당시 김 동문은 얼룩말을 즐겨 그렸다. 밑그림 없이 즉흥으로 그리는 방식을 고수하면서, 얼룩말의 줄무늬 하나에서 시작해 전체를 완성하는 묘미와 초식동물의 무리가 주는 따뜻함에 매료돼 있었다. “맹수는 싫다”고 했지만, 절실한 부탁에 마음을 돌렸다. 가수가 개인사로 마음앓이하며 만든 음악에, 김 동문의 백호가 화룡점정을 찍은 그 앨범은 지금도 명반으로 꼽힌다. 

한 번 화폭에 들어앉은 호랑이는 쉽게 나가지 않았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했을 때 호랑이와 같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랑이가 가진 묵묵함, 의연함, 외롭게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가는 모습으로 풀어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격랑을 등지고 터벅걸음 옮기는 호랑이는 바로 아버지를 생각하며 그린, 숱한 그의 호랑이 중 주인공이다. <아래 그림> 때로는 폐허와 화염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변주된다. 



김남표(서양화91-98) 'Instant Landscape-Sensitive Construction #19' Pastel on canvas, 210x181.8cm, 2017.


관조하는 듯, 고뇌하는 듯한 김 동문의 호랑이엔 영험한 기운이 감돈다. 그에게 호랑이의 시선은 ‘시대의 시선’이다. 대학 시절부터 문명을 얘기하려 상대적인 존재인 동물을 그렸고, 지금도 우리 곁에서 사라진 부엉이와 호랑이 같은 동물이 도시의 어딘가에서 화가인 자신을,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는 가정을 하며 그린다.

“동물 표정 연구를 많이 해요. 왜 포효하는 호랑이를 그리지 않느냐고들 묻는데, 제가 생각하는 시대의 감정이 그런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코로나 시대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많이 존재할 거예요. 우린 그런 불편한 감정을 다시 희망으로 전환하는 능력이 있고요. 누군가 날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살아가는 데 상당한 용기를 줄 거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중견 작가인 그는 과감한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한동안 제주 풍경을 담은 유화 작업에 몰두했고, 최근엔 VR 페인팅으로 그린 입체적 호랑이 작품을 NFT 미술품 시장에 내놓았다. VR 장비를 끼고, 호랑이 뱃속까지 들어가 그려 보기는 처음이었다고. 그의 그림에서 폭포는 이질적인 개체들과 호랑이를 이어주는 매개체라고 귀띔했다. 조각가 윤두진과 공동작업인 ‘텐트’ 활동에서도 호랑이는 중요한 테마다. 

“이상하게 올해는 호랑이가 그리기 싫어요. 마치 이제 하려고 했는데 공부하라고 하는 느낌이 들어서(웃음). 제 호랑이 그림마다 어떤 것은 밝고, 어떤 것은 묵직한 감정을 담고 있어요. 아직 해결 못한 감정들을 풀기 위해서라도 호랑이와 좀더 함께 할 것 같습니다.”           

김 동문은 오는 2월 28일까지 광화문 교보문고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개인전 '제주도를 그리다'를 연다.    
     
박수진 기자 



뚱하고 나른한 ‘뚱랑이’ 국내외서 러브콜 쇄도
 
송의섭·배진영  무직타이거 대표


크리스마스를 앞둔 작년 12월 23일 서울 코엑스 광장에 7미터 높이의 대형 호랑이 모형이 등장했다. 털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것도 재밌었지만 호랑이 하면 흔히 떠오르는 용맹함, 무시무시함과는 거리가 먼 순둥순둥한 생김새가 더 인상적이었다. 뚱하고 나른해 보이는,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이 호랑이의 이름은 ‘뚱랑이’. 송의섭(디자인학부04-12)·배진영(디자인학부07-12) 동문 부부의 손에서 태어났다.

“(송의섭) 현대자동차에서 차량 외관 디자이너로 근무했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최상의 디자인을 찾기 위해 미국·유럽·중국·인도 그리고 한국의 각 디자인 센터들이 선의의 경쟁을 하는 구조였죠. 입사 초기엔 미국적 감성이나 유럽의 느낌을 구현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러나 본토의 결과는 달랐고 결과도 좋지 않았죠.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한국적 느낌을 녹여내기 시작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결에 맞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주 큰 힘이 된다는 걸 깨달았죠.”


나만의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욕심에 퇴사를 단행한 송의섭 동문. 재직 시절 경험에 비추어 한국적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를 택했다. 올림픽의 마스코트이자 우리 설화의 단골 주인공, 호랑이였다. 그렇게 아내 배진영 동문과 함께 차린 디자인 회사가 ‘무직타이거’. 직장을 벗어나 원하는 일을 하는 자유로운 삶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호랑이 앞에 무직(無職)을 붙였다.

“(배진영) 샘표에서 식품 패키지 디자이너로, 현대모비스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복지도 좋았고 배울 것도 많은 곳이었지만, 미래가 이미 정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불확실하지만 정체되지 않은 미래를 그리고 싶은 마음으로 과감히 창업을 결정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재수, 복수전공, 이직 등 여러 실패와 도전 속에서 많은 성장을 했거든요. 이번에도 안주보단 도전을 택했고, 남편과 마음이 잘 맞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무직타이거의 호랑이는 전통적인 호랑이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다. 한국적이란 말 속엔 과거 조상뿐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까지 녹아들어야 한다는 게 송 동문의 지론. 좀 뚱뚱하면 어떠냐는 듯, 좀 쉬면 어떠냐는 듯 평온하게 드러눕거나 뒹굴거리는 뚱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바쁘게 아등바등 사는 가운데 하루 한두 시간쯤은 죄책감 없이 흘려버려도 괜찮지 않냐는 힐링의 메시지를 받게 된다.

구찌, 기아, 스파오, 에뛰드, 락앤락, 코카콜라, 파스쿠치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여 신상품을 선보이고 있는 무직타이거는 해외 여러 국가로부터 러브콜이 쇄도, 중국·홍콩·일본의 명소에도 전시 및 판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