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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호 2022년 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좌는 거짓말쟁이, 우는 기회주의자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좌는 거짓말쟁이, 우는 기회주의자



전영기
 
정치80-84 
시사저널 편집인
본지 논설위원


마오쩌둥과 닉슨은 1970년대 미·소 중심의 세계질서를 미·중 주도로 전환한 리더들이었다. 마오쩌둥은 닉슨을 미국 대통령 시절 처음 만나(1972년 2월) 현대사의 새로운 물꼬를 튼 뒤 인간의 깊이를 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민간인 닉슨을 다시 초청(1976년 2월)했다. 두 번째 미팅은 마오쩌둥 사망 7개월 전 일로 그가 닉슨을 진심으로 좋아한 일면을 보여준다. 

성향과 노선이 극과 극이지만 두 사람은 인간적으로 통했다. 마오는 “유명한 반공주의자 닉슨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큰 일이 기계적인 정세 분석과 이해관계의 일치만으로 이뤄질 리 없다. 의사결정자들끼리 화학적인 결합, 우정과 신뢰의 관계가 필요조건으로 쌓여야 한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1980년대 후반 공산국가 소련의 소멸로 귀결되었다.     
   
마오가 닉슨 대통령과 공식 대좌를 준비하면서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지침으로 줬다는 선문답 같은 말(1971년 10월)도 재미있다. “좌우를 잘 살펴야 한다. 좌는 허황된 소리와 거짓말을 잘한다. 우는 기회주의자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상대가 제안하게 만드는 것이 외교다.” 

이 인상적인 워딩은 중국 전문가 김명호 교수의 글을 읽다가 발견하였다. 출전이 궁금해 김 교수에게 따로 물어봤더니, 중국에서 출판돼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책 ‘紅墻警衛(홍장경위)’에 나온다고 했다. ‘홍장’은 ‘붉은 울타리’란 뜻으로 중국 공산당 간부들의 집단 거주지인 베이징 중난하이를 지칭한다. ‘경위’는 ‘경호’를 뜻한다. 1970년대 마오쩌둥을 경호하던 책임자들의 구술로 작성된 히든 스토리가 홍장경위란 책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마오는 중국 관계자들이 미수교 적대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대할 때 자세를 가르치려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격다짐으로 관철하려 하지 말라.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제안하도록 유도하라는 게 핵심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을 추구하라는 얘기다. 중국측 인사들에게 좌파처럼 굴지 말라는 점도 강조했다. 마오가 보는 좌파는 자기네 이념을 고수하고 전파해야 한다는 집착에 사로잡혀 허황된 소리나 수시로 거짓말을 해대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파처럼 보이는 것도 경계했다. 미국인들의 마음에 들어 보려고 좋은 말과 아첨하는 표정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과유불급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어 일을 성사시키기에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