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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021년 12월] 뉴스 기획

‘화석정 기둥에 기름 잘 발라두라’ 율곡이 말한 뜻은

제2차 국토문화기행, 임진강

지난 11월 17일 제2차 국토문화기행에 참가한 동문들이 반구정 오르는 계단에서 포즈를 취했다.


‘화석정 기둥에 기름 잘 발라두라’ 율곡이 말한 뜻은 
 
제2차 국토문화기행, 임진강
 
임진왜란 때 피난길 밝힌 화석정
통일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 무덤
삼국 축성 양식 섞인 호로고루성
걸음마다 구비마다 역사 현장


육군 1사단 마크가 커다랗게 그려진 낡은 철문 앞으로 동문 한두 명이 다가갔다. 한 명, 또 한 명. 문틈으로 잠시 임진강 임진나루를 들여다보고 온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말이 없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멀리 북한 땅을 바라볼 때, 탄성을 지르며 서로의 소회를 털어놓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뭐 볼 게 있겠어.’ 짐작하고 꼼짝하지 않았던 기자의 발길을 옮긴 침묵이었다.

철문 너머로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양옆에 절벽을 거느린 것으로 모자라 온몸에 안개를 두른 임진강은 마치 이곳이 세계의 끝인 양 건너편 땅을 보여주지 않았다. 하얗게 흐려진 눈앞에 허겁지겁 배에 오르는 선조 임금의 형상이 떠오르는 듯했다. 

슬레이트 지붕의 단층 건물 몇 개뿐인,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나루터 마을이 6·25전쟁 전엔 반도에서 손꼽히는 물류 및 교역의 중심지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동문들이 말을 잃은 이유였을 것이다.

11월 17일 임진강 유역으로 떠난 제2차 국토문화기행은 시간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굽이굽이마다 역사의 한 장면이 응축돼 있었기 때문. 

안내·해설을 맡은 이민부(지리교육74-78) 교원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동문 16명이 참가한 이날 답사는 오전 9시 2호선 종합운동장역에서 출발해 △오두산 통일전망대 △임진나루 △고랑포 △호로고루성 △화석정(花石亭) △반구정(伴鷗亭) △숭의전(崇義殿) △경순왕릉 △장파리 주상절리 등을 두루 살펴보고, 오후 6시 30분쯤 서울로 돌아와 마무리됐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곳을 둘러보느라 피곤했을 법한데, 서울대인 특유의 지적 호기심은 지칠 줄 몰랐다.

임진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대규모 하천이다. 최고 길이 254㎞, 유역 면적 8135㎢. 서울 면적의 약 15배에 달한다. 한강과 만나는 하류 부분은 하천 비무장지대(DMZ)를 이루고, 중류 이상은 북한 영토에 속한다. ‘나루를 만나다’라는 뜻의 이름답게 강 이곳저곳에 나루터가 많다.

그중 고랑포는 삼국시대 때부터 전략적 요충지이자 물자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장터가 들어설 만큼 규모가 컸고, 함경도와 강원도의 물산이 내려와 서해로 한양으로 운반됐다. 뱃길의 안전과 포구의 번성을 비는 도당굿이 3년을 주기로 보름 동안 열렸고, 이 굿을 보러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들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1930년대엔 개성과 한성 간의 활발한 교류에 힘입어 화신백화점 분점 설립이 추진될 정도로 번성했으나, 6·25전쟁과 남북 분단을 거치며 쇠락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 무장공비 일당이 침투했던 경로이기도 하다. 

임진강은 갈수기에는 나룻배나 교량 없이도 도강이 가능한 여울이 산재해 있어 군사 이동에 유리하다. 특히 호로고루 산성은 절벽에 인접한 여울 도강지로 천연의 요새다. 백제의 토성을 고구려가 장악, 목책과 석성으로 재건축한 후 신라가 다시 점령, 보수하면서 삼국의 축성 양식이 중첩된 독특한 곳이다. 이 일대를 놓고 얼마나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지금은 남과 북을 가르며 흐르고 있으니 민족의 영토로서 이 강의 의미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시계방향으로 임진강 일대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펼쳐진 장파리 주상절리, 고려시대 왕과 충신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 내부 전경, 울타리 너머로 올려다 본 경순왕릉, 화석정에서 임진강 내려다 보는 동문들.


화석정은 조선 제14대 왕 선조(1552-1608)가 한밤중 의주로 피난 갈 때 불태워져 어둠을 밝힌 정자다. 왜구의 침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한 율곡 이이(1536-1584)가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율곡은 임금의 파천을 예견한 듯 평소 하인들에게 ‘화석정 기둥에 기름을 잘 발라 두라’ 일렀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80여 년 동안 빈터만 남아 있다가 1673년 율곡의 후손이 복원했다. 그러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됐고,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시 유림들이 다시 복원한 것이다. 1973년엔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 유적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단청을 입히고 주위를 정화했다. 율곡이 8세 때 지었다는 ‘등파주화석정시(登坡州花石亭詩)’가 화석정 내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처마 밑에 걸려 있다.

반구정은 조선의 최장수 재상인 황희(1363-1452)가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 삼으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신기하게도 다른 곳에선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갈매기 무리가 이곳을 거닐 땐 지척에서 하늘을 날아다녔다. 반구정 또한 6·25전쟁 때 불타버렸으나 황희의 후손이 복구했고, 1967년 옛 모습으로 개축했다.

숭의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명으로 세워진 묘에 고려 태조 왕건(877-943)을 비롯한 일곱 왕과 정몽주(1337-1392)를 포함한 고려 충신 16명의 제사를 올렸던 사당이다. 문종(1414-1452)이 숭의전이라 이름 짓고 고려 왕족의 후손들로 하여금 이곳을 관리하도록 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됐다.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을, 국비 및 지방 보조로 1975년 배신청, 1976년 이안청을 복원했다. 

새로 들어선 왕조가 이전 왕조를 예우한다는 측면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미상-979)을 태자보다 높은 지위에 올렸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경순왕릉은 팔백연화격, 금계포란형으로 풍수지리상 국내 제1 명당으로 꼽힌다. 일찍부터 상서로운 기운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 수험생을 둔 학부모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고. 

실제로 우리 일행 중 김주형(AWASB 1기) 동문이 “집안 어르신의 묘”라며 경건하게 합장을 올리기도 했다. 김 동문은 “평소 역사와 사적에 관심이 많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선뜻 길을 나서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에 조상님을 찾아뵈었다”고 말했다. 방남순(가정관리70-74) 동문은 “세 번째 찾은 경순왕릉이지만 이곳에 얽힌 역사 이야기는 오늘 처음 들었다”며 “너무 학술적이지도 너무 대중적이지도 않은 해설이 여행의 재미를 더했다”고 평가했다. 임진강 일대 문화 사적 대부분이 전쟁의 상처를 입은 것처럼 경순왕릉도 비석에 다수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마지막 답사지인 장파리 주상절리는  6500만 년 전 용암으로 뒤덮인 대지에 임진강이 발달하면서 침식, 형성됐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임진강 하류를 따라 강변 협곡에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2015년 12월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본회는 작년 11월 5일 충북 괴산의 화양구곡에 이어 두 번째 답사를 진행했다.
나경태 기자 

호로고루성에 올랐다 내려가는 동문들.


안내·해설 맡은 이민부 동문은
모교 지리교육과 졸업 후 모교 환경대학원에서 석사, 미국 유타대에서 지리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지리학회 회장, 한국지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반도의 지역구조와 통일 방안, 한국의 국토연구, 자연지형 조사, 한국과 동북아, 세계의 지리교육, 환경교육, 한·중 국경의 지형구조와 인문환경 등에 관한 논문 30여 편을 썼다.





참가 소감


정연옥
KFL 8기
프리랜서 통번역가

화신 백화점 분점 들어설 뻔한 고랑포 나루
 
위드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드디어 기다리던 국토문화기행이 시작됐다. 이 행사를 학수고대하는 이유는 전문가 교수님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가보지 못한 곳, 혼자서는 몰라서 찾아갈 수 없었던 곳, 교통편이 불편하여 방문하기 힘든 곳 등을 총동창회에서 제공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해 동문들과 함께 구석구석 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민부 교수님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풍부한 자료 준비와 구체적인 해설로 깊은 감동을 듬뿍 안겨 주었다. 참으로 모처럼 만에 즐겁고 보람찬 날이었다. 

오두산 통일전망대는 통역 일을 하면서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임진강 주변에 이렇게 많은 역사유적지가 산재해 있는 줄은 몰랐다. 특히 고랑포 나루터에 1930년대 화신백화점의 분점이 세워질 뻔했다니 놀랍다. 그만큼 교역량이 많았던 것이다. 원래 고랑포가 장단군에 속했으나, 남북이 1953년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의하여 군사분계선을 설치하면서 파주군에 속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장단이 농산물 집산지, 콩의 집산지인 까닭에 장단콩두부, 장단콩비지로 유명한 것도 알게 됐다. 

이름조차 특이한 호로고루성은 백제의 성을 고구려가 장악하고 재건축했지만 결국 신라의 성이 되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세계사에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듯, 임진강이 삼국시대에도 요충지였던 모양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시대의 왕들과 공신들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인 숭의전이 건립된 점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제주도와 무등산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주상절리, 임진나루의 진서문(鎭西門) 터와 성벽 등등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