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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2021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정치적 내전과 민주주의 위기

이용식 문화일보 주필 칼럼
관악춘추
 
정치적 내전과 민주주의 위기


이용식  
토목공학79-83
문화일보 주필
본지 논설위원
 
“기억하라, 민주주의는 결코 오래 지속하지 않는다. 빨리 낭비되고, 지치고, 마침내 스스로를 죽인다. 자살하지 않는 민주 국가(a democracy)는 없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설계자이기도 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대표적 인사인 존 애덤스(미국 초대 부통령, 제2대 대통령)가 남긴 섬뜩한 경고다. 200여 년 뒤인 지난 1월 대선에서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의사당에 난입했을 때, 그의 예언은 새삼 관심을 끌었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시끄럽고 비틀거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는 제도이긴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점진적 자살’이 발생하고 있다. 20세기의 후진국형 쿠데타와는 전혀 다르고, 민주적 절차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대응하기도 훨씬 힘들다.
이런 현상에는 나라별로 다양한 대내외 요인이 작용하지만, 공통적으로 1인1표제의 확장과 이에 뒤따르는 포퓰리즘의 악성 진화 문제가 있다. 보통·평등 선거가 정착되고, 인터넷 발달로 누구나 모든 정보를 빛의 속도로 수신하고 또 발신할 수 있게 되면서 대의(大義)와 공론(公論)은 뒤로 밀리고, 그 자리를 눈앞의 이해와 즉흥적 여론이 채운다. 여러 나라에서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면서 포퓰리즘의 세계화도 진행 중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에 내재된 원천적 뇌관인 셈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 선진국에서조차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가 아니라 ‘정치적 내전’으로 변질되는 경향을 보인다. 중도 정치세력이 약화하고, 극단 세력이 득세하면서, 정치적 충돌은 물론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진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 양극화가 이미 심각한 지경에 도달했다. 내년 3월 9일 선거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타락 우려가 커지는 만큼 대안 모색도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나라별로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결선 투표 도입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중도 정치세력에게 힘을 실어주고, 다양한 세력의 연대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국회의원 및 지방선거는 선거법을 바꾸면 가능하고, 대통령의 경우엔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치적 합의로 실시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 위기 극복에 한국이 앞장설 수 있다면 21세기에는 ‘K-정치’를 통해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일에도 오늘날 자유와 번영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모교 동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민의 사랑과 지원을 받았던 데 따른 의무이기도 하다. 또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 번쯤 새삼 되새겨볼 구절이 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