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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호 2021년 10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惡의 반대가 꼭 善은 아니더라!

방문신 논설위원 칼럼
관악춘추

惡의 반대가 꼭 善은 아니더라!



방문신

경영82-89
SBS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세상에는 좋은 놈과 나쁜 놈만이 있는 줄 알았다. 어린 시절 영화를 볼 때, 스토리를 단박에 이해하기 어려울 때면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부터 물었다. 그 답을 듣는 걸로 복잡한 줄거리를 일거에 해결하곤 했다.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구분 짓는 순간, 머리 속은 깔끔하게 정리됐다. 해법도 명쾌했다. 좋은 놈을 응원하면 됐다. 나쁜 놈이 응징되는 권선징악은 통쾌했다. 사회가 단순할수록, 서로를 잘 아는 공동체일수록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구분은 더 명확했으리라. 수십년 동안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내 눈으로 직접 봐 왔기에 선악의 판단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익명사회에서는 이런 전제가 쉽지 않다. 내가 남을 모르고 남이 나를 모르기에 좋은 놈, 나쁜 놈에 대한 평가를 하기 어렵다. 게다가 사회는 더 복잡해졌다.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관점에 따라 선악의 판단까지 달라질 수 있다. 60% 선하고 40% 선하지 않은 중간 지대도 많아졌다. 총체적 진실을 구성하는 파편들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좋은 놈, 나쁜 놈의 쾌도난마식 구분이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중들은 좋은 놈, 나쁜 놈에 대한 고정관념, 이분법적 선악 판단에 익숙해 있다. 선을 향한 대중들의 순수함 때문에 더 그렇다. 이럴 때 등장하는 것이 선악 개념을 이용한 가짜 프레임이다. 세상을 바꿀 실력도 없고, 선에 대한 의지도 없으면서 ‘나는 절대선이고 너는 절대악’이라는 낙인찍기에만 집착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일종의 가스라이팅이다. 순수한 대중심리를 역이용해 선의 이름으로 다가오기에 더 위험하다. 지난달 김포에서 발생한 택배 대리점 주인의 극단적 선택은 애잔하면서도 울림이 있었다. 약자라고 생각했던 집단이 진짜 권력이었고 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을이었다.

충격이 커서 선악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선한 척 하기, 정의인 척하기, 사과 한 마디 없는 것은 정치판 그대로였다. 사람 대 사람, 조직 대 조직 곳곳의 관계가 그 아류가 돼가고 있다. 기업체도 공직사회도 투서가 판친다. 사기죄, 무고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선의 동반자인 진지함, 겸손함, 진실은 외면하면서 상대를 악으로 덧칠하는 기술만 세계제일이라면 이건 분명 위험한 신호다. 언어 개념으로 악의 반대는 선이어야 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악의 반대편이 꼭 선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