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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2021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해준 것 없는데 잘 커줘서 고맙다

박 민 문화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해준 것 없는데 잘 커줘서 고맙다

박 민 
정치82-86
문화일보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최근 한 종편의 밴드 경연 프로그램에 꽂혔다. 본방을 놓치면 재방을 찾아보기도 한다. ‘발라드 감성’은 아직 공감하지만 ‘록 스피릿’은 좀 부담스러운데 프로그램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고 끝날 땐 아쉬움을 느낀다.

몰입감을 선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참가자 모두가 자신의 악기와 목소리,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30대 중반까지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예외는 없다.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 않으면 이르지 못한다)을 증명하듯 실력도 출중하다. 5명의 심사위원 모두 대중음악계의 레전드지만 “우린 저만큼 못해” “완전 월드 클래스” 등의 감탄을 쏟아낸다. 

경연 단계별로 멤버가 바뀌지만 밴드의 팀워크는 요즘 정치권에서 말로만 하는 ‘원팀’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팀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다. 엄청난 파워를 가진 드러머가 발라드를 부르는 보컬을 위해 숨소리까지 죽이며 연주를 하고 클래식 피아니스트는 록 스피릿을 위해 일렉트릭 키보드 위를 폭풍처럼 질주한다. 편곡에서 악기 배치, 연주 파트 배분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최고의 하모니를 이루기 위해 협력한다. 현재의 팀원이 다음 단계에서 경쟁자가 되지만 그런 걸 의식하는 참가자는 보이지 않는다. 

경쟁팀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연주를 즐기면서 경연은 축제가 되고 그 속에서 서로 성장의 에너지를 공유한다. 좋은 공연이 펼쳐지면 대기실에서는 마치 자기 팀이 성공적 연주를 한 것처럼 환호와 찬사가 쏟아진다. 간혹 순서를 기다리면서 팀원끼리 좋은 공연을 다짐하기도 하지만 상대 팀을 이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팀의 색깔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격려가 대부분이다. 

자기 일을 즐기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능력과 성과를 질투하고, 세계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우물 안 개구리면서 타인과 제도를 탓하고, 같은 팀에 속해 있으면서도 팀워크나 공동의 목적보다는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앞세우기에 급급하고, 편 가르기에 몰입하면서 상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기성세대다. 이들이 꼰대 짓을 일삼고, 특권을 이용해 공정성을 훼손하고, 잘못된 정책으로 미래의 기회까지 봉쇄해버리는 ‘헬 조선’에서 어떻게 이런 실력과 품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나왔을까. 미안하고, 부끄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다음 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