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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호 2021년 7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망국의 길, 강국의 길

김광덕 서울경제신문 논설실장·본지 논설위원


망국의 길, 강국의 길



김광덕
정치82-86
서울경제신문 논설실장
본지 논설위원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8월쯤 볼리바르 지폐에서 ‘0’을 여섯 개 빼는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2018년에 170만%까지 치솟았던 연간 물가상승률이 다소 진정됐지만 지금도 수천%에 이르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다. 석유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베네수엘라는 한때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부터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까지 22년 동안 좌파가 집권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무상 교육·의료·토지분배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 데다 국제 유가도 하락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공짜 늪에 빠지면 베네수엘라 길을 가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 수준으로 보면 한국은 남미의 베네수엘라보다 유럽의 그리스를 더 닮았다. 그리스는 1980년까지 조선·자동차·석유화학 산업이 발달했고 재정도 튼튼했다. 그러나 1981년 집권한 사회당 정권은 공무원 대폭 증원과 함께 최저임금 급격 인상, 무상 의료·교육 등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경제성장률은 추락하고 1980년 22.5%에 그쳤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983년 33.6%, 1993년 100.3%까지 급증했다. 야당이었다가 잠시 집권했던 우파 정당도 퍼주기 경쟁에 가세했다. 결국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되 ‘묻지마’식 선심 정책과는 선을 그어야 한다.

부강한 나라로 나아가는 지름길은 과학기술로 무장하는 것이다. 영토가 작고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고급 인재 육성을 통한 과학기술 초격차 확보가 살 길이다. 강국들은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에릭 랜더 MIT 교수를 장관급으로 격상된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으로 임명하면서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미국이 미래 산업의 리더가 되는 방안’ 등에 대해 물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56조원을 반도체 분야에 투입하기로 하는 등 전략 산업 공급망 새판 짜기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이에 맞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근 공산당 창당 100주년 연설에서 ‘과학기술 자립과 자강’을 역설했다. 중국은 지난 3월 양회(兩會)에서 인공지능 등 7대 첨단기술 육성에 ‘십년간 하나의 칼을 가는 정신’으로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중동의 이스라엘은 과학기술 육성으로 부국강병에 나서고 있다. 포퓰리즘은 망국의 길이고, 과학기술은 강국의 길임을 실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