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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호 2021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영준아, 그래도 힘내서 달려!

강경희 논설위원 칼럼
느티나무 칼럼

영준아, 그래도 힘내서 달려!



강경희

외교84-88
조선일보 논설위원
본지 논설위원


화창한 날씨에도 활력이 생기질 않는다. ‘코로나 유배’가 길어진 데다, 온갖 뉴스를 도배한 권력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가 건강한 윤리와 가치관을 무너뜨려 성실한 삶이 부질없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문득 1년여 전 취재한 영준이를 떠올렸다. 이 지난한 1년을 어찌 보냈으며 어떻게 변해 있을까.

2020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경남 김해외고 송영준 군에 대해 ‘노력이라는 재능’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 있다. 영준이는 중1 때 아버지를 여의고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김해외고에 진학했는데 고교 첫 시험에 전교생 127명 중 126등을 했다. 공고로 전학하려다 “장학금 받을 수 있으니 공부하자”는 선생님 격려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교육 받지 않고 하루 4시간 자면서 공부했다. “앉으면 너무 졸려 밤늦게까지 학교 복도를 걸어다니며 공부했어요.”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를 좌우명 삼아 ‘전교 꼴찌’가 수능 만점 ‘전국 최고’가 됐다. 영준이는 2020학번으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생이 된 영준이는 여전히 긍정적이었지만 전화 목소리는 한결 어른스러워졌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을 받지만 작년에 상경해서 1학기는 학교 기숙사, 2학기부터는 학교 앞에서 자취한다. 관악회 장학금으로 학비 걱정은 덜었다지만 홀어머니한테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생활비 해결하는 고달픈 일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달 방값만 45만원이라 과외와 학원 아르바이트로 돈 벌며 분주하게 산다. 예전에 서울대에는 영준이 같은 ‘개천 용’이 바글바글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역동성이었다. 지금은 여유로운 가정에서 부모 뒷바라지 받으며 공부만 하는 서울대생이 많아졌다. 사다리는 끊어져가고 가난한 고학생의 박탈감은 커졌다. 유복한 친구들은 학점 따려고 공부만 하는데 생활비 벌랴, 공부하랴 힘들지 않냐 했더니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요”하는 의젓한 대답이 돌아온다.

영준이는 “남들보다 머리도, 형편도 좋지 않고 가진 재능이라고는 오직 노력 뿐이라 ‘평생’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했던 청년이다. 그는 알까. 자신의 정주행 속도보다 몇 곱절 미친 속도로 역주행한 사회가 자신 같은 청춘들을 얼마나 좌절시키는지. ‘노력의 기적’을 보여줬던 영준이가 한걸음 한걸음 자력으로 전진하고 평가받는 사회가 지극히 정상인데 어쩌다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버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