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17호 2021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뇌 과학과 공학이 만나면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칼럼
동문칼럼

뇌 과학과 공학이 만나면



신희섭

의학68-74
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기초과학연구원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단장에서 퇴임하면서, 그간 몸담아 왔던 뇌 과학 연구에 대해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게 됐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뇌 기능에 기인하며, 인류 문명 자체가 뇌 기능의 소산임을 생각할 때, 뇌 과학의 미래는 인류의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뇌 관련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뇌 인지기능의 작동 기작을 밝히는 것이다. 인지기능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 과정을 뜻하는데, 인간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나타내는 모든 존재행위(인식, 동작, 정서, 학습, 기억, 등)를 수행한다. 둘째는 뇌 기능이 잘못되어 나타나는 질환의 원인 및 과정을 밝히고 치료방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연구이며, 셋째는 뇌와 컴퓨터 간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다.

뇌 인지기능 연구의 시작은 뇌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뇌의 세포가 발현하고 있는 분자들을 동정하고, 그로 인하여 생성되는 세포의 구조와 기능의 다양성, 나아가 신경세포들의 전체 연결 지도(connectome)를 파악하는 일이다. 신경회로를 바탕으로 신경세포에서 생성되는 전기신호와 그 흐름을 측정한 후 특정 행동의 발현과 특정 회로 간의 인과관계를 규명한다. 예를 들면, 해마의 특정 신경세포들과 전전두엽의 신경세포들 간의 전기신호 교환을 억제하여 장기 기억 형성에 문제가 생기면, 그 회로와 장기 기억 형성 간에 인과관계가 검증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는 장기 기억 형성에 관한 극히 일부의 정보에 불과하다. 컨테이너선의 좌초로 인해 수에즈 운하가 차단되면 유럽-수에즈-아시아 간의 물류 흐름이 막힐 것이지만, 그 좌초 지점이 해당 해상 운반 경로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뇌 전체의 신경회로와 신경세포들의 기능 파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뇌는 약 1,000억개의 신경세포(86±8 billion neurons)와 그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의 교세포(glia cell)들로 이뤄져 있다. 신경세포가 전기신호에 의한 정보 처리의 주체지만, 교세포의 조절기능이 필요하다. 회로를 형성하기 위한 신경세포 간의 시냅스는 100조 개에 달한다. 이렇듯 방대한 구조로부터 생성, 전파, 소멸하는 전기신호를 측정해야 한다. 방대한 정보는 고도의 분석기법을 필요로 한다. 뇌 과학 연구에 신경생물학에 더하여 수학, 물리, 화학 등의 기초과학뿐 아니라 전산, 전자, 기계, 재료·나노, 이미징 등 공학이 대거 참여하는 이유이다.

뇌 질환은 분자나 세포 수준에서 일어난 결함이 해당 신경세포가 이루고 있는 신경회로의 기능(전기신호) 결함을 유도하면서 발현한다. 따라서 두 가지 치료방법이 가능하다. 분자 세포 수준의 결함을 정상으로 돌리거나 잘못된 전기신호 자체를 직접 교정하는 것이다. 종래에는 분자 세포 수준의 결함(치료 표적)을 규명하고 이를 생물학, 화학적인 방법으로 조절하는 접근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엔 뇌 회로의 전기신호 결함을 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직접 교정하는 뇌심부자극기술(Deep Brain Stimulation), 등의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예로서, 파킨슨 환자의 손 떨림이 뇌의 심부에서 생성되는 신경세포의 병적인 발화에 기인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해당 부위에 전극을 삽입하여 병적인 전기신호를 인위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손 떨림을 제어하는 식이다. 전극 삽입 외에도 두개골 밖에서 자기장, 초음파, 직류전류 등을 적용하는 다양한 물리학적인 방법들이 연구되고 있다. 머지않아 파킨슨병, 우울증 등 신경정신과 질환뿐 아니라 정상인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물리학적인 기술들이 개발돼 사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뇌 연구와 공학의 만남은 뇌 과학 연구를 새로운 장으로 이끌고 있다. 뇌심부자극기술도 그 중 하나로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이하 BCI)의 기본적인 형태이다. 이는 뇌와 컴퓨터의 양방향 정보 소통을 바탕으로 한다. 즉, 컴퓨터가 뇌의 전기신호를 읽고 분석하여 뇌기능의 상태를 파악(암호 해독 Decoding)하고, 피드백으로서 그 상태를 조절하는 정보를 전기신호로 주입한다. 뇌 질환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서 영화에서 처럼, 헬리콥터 운전 기술의 정보를 주입하거나, 생소한 기억을 인위적으로 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마음의 움직임(해독된 정보)만으로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를 움직일 수 있게 된다. BCI 기술은 이미 가상현실 헤드셋(Virtual Reality Headset)의 형태로 모바일 버추얼 게임에 적용되고 있으며, 이의 군사적인 활용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BCI 기술이 공상 과학의 범주를 넘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는 BCI 기술 개발을 목표로 신생 기업 ‘뉴럴링크’(Neuralink)를 설립했고, 많은 신생 기업들이 줄줄이 생기고 있다. 2027년엔 이 시장이 약 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뇌 과학과 공학의 만남이 이루는 연구 결과는 필연적으로 인류 문명의 미래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는 윤리적 논의의 필요성이 생각보다 빨리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