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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023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저숙련 뉴스 노동자로 내몰리는 언론인들

윤석민 신문81-85 모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관악논단
 
저숙련 뉴스 노동자로 내몰리는 언론인들



윤석민
신문81-85
모교 언론정보학과 교수
 
 
한국 언론이 심각한 파행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론에 대한 신뢰는 역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언론은 사회 통합에 기여하기는커녕, 정치 갈등, 사회 분열,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팩트보다 진영을 앞세우는 일부 언론은 가짜뉴스로 통칭되는 허위 정보, 괴담, 선동의 온상이 되고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 디지털 전환의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언론의 디지털 전환은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조응하는 새로운 감각의 뉴스, 새로운 뉴스 제공 방식, 새로운 뉴스 조직과 인력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사들은 주먹구구식 편집국 리모델링, 아날로그·디지털 뉴스의 비효율적 병행, 클릭 수 증가를 위한 어뷰징 팀의 가동 등, 디지털 전환의 명확한 비전을 갖추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을 지키는 것이 가능한가. 보다 근본적으로 언론을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그럴 가치가 있기는 한가.

혹자들은 종이신문으로 대표되던 언론은 마치 과거에 마차가 자동차에 밀려 사라지고 타이프라이터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로 대체되듯, 자연스레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언론이 자연도태의 과정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언론의 본질은 그 “테크놀로지”가 무엇이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감시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주요 사태들을 전달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소통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중 양대 패권, 우크라이나 전쟁 현황, 북의 핵위협, 다가올 총선, 주변의 사이코패스 등에 대한 최선의 팩트에 접근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알고, 삶을 영위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언론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우리의 눈과 귀, 판단능력이 위협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중한 가치재를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토대, 그리고 미래의 희망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언론 디지털 전환에 고급 인력 필수 
서울대 저널리즘 스쿨은 시대 요청 
 
그렇기에 언론의 위기 상황은 방치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간 많은 논의들이 있었음에도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는 종래의 접근방법이 잘못되었음을 방증한다. 언론에 대한 규제·징벌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이는 언론의 문제를 문제의 근원인 정치권력, 진영화된 시민사회, 행정 권력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는 모순을 내포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위헌적이며, 현실의 시장상황과도 배치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지금까지 실패했고, 단언컨대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다. 언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권력이 아닌, 언론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문제는 하루하루 뉴스제작에 힘겨운 언론이 이를 위한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언론이 사회를 지켜왔듯, 이제는 사회가 언론을 지켜야 한다.

이 차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언론의 뿌리에 해당하는 언론 인력이다. 언론의 최일선에서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현장 인력의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위기 극복 논의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최근 들어 현장의 언론인들은 열정과 사명감은 고사하고, 몸을 가는 고된 노동, 사회적 불인정, 불확실한 미래 전망 속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저숙련 뉴스 노동자(precariat)로 내몰리고 있다. 종래의 공채 방식 및 도제식 수습 교육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수명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이끄는 인재 양성의 책임을 진 서울대학교가 나서야 할 당위성이 여기 있다. 언론위기 극복 및 디지털 전환의 핵심과제라 할 언론 인력 양성의 시대적 요청에 서울대는 부응해야 한다. 서울대가 보유한 우수한 교육 자원을 미래 언론인력 양성 차원에서 최적의 조합으로 결합시킨 대학원 과정, 이른바 저널리즘 스쿨의 설립이 그것이다.

저널리즘 스쿨은 미래 언론인이 갖추어야 할 규범성, 코딩 및 데이터 분석 능력, 영역별 전문지식 교육을 서울대 내의 교육기관들이 협력해 제공하는 혁신적인 융합형 교육과정이다. 저널리즘 스쿨의 교육은 강의실을 벗어나 뉴스의 혁신과 수용성을 연구하는 뉴스 랩을 기반으로, 학생들 스스로 탐구하며 배우는 체험형 교육(learning by doing)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저널리즘 스쿨은 언론의 디지털 전환을 선도할 혁신 생산기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또한 스쿨의 일환으로, 하버드대학의 니만 펠로우십과 같은 ‘(가칭) SNU 저널리즘 펠로우십’을 출범시켜 저널리즘 산학 협력의 허브로 키우는 것도 가능하다.

왜 서울대인가? 그 답은 언론의 미래가 달린 이 교육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주체가 서울대이기 때문이다. 미래 언론을 주도할 인력 양성 시스템의 설립은 서울대에 주어지는 특혜가 아닌 서울대가 져야 할 책임이다. 

서울대가 선도하는 혁신적 언론 교육 모형은 타 대학들로 빠르게 확산될 것이다. 이들에게 서울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교육과정도 함께 운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서울대 동문들의 힘이 결집될 때 저널리즘 스쿨은 바로 추진할 수 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이념과 정파로 찢어진 언론, 정치, 사회를 바꾸는 의미심장한 연쇄반응으로 이어질 것이다. K팝, K무비, K드라마에 이어 세계 언론을 선도하는 K저널리즘이 그 힘찬 날개를 펼치게 될 것이다.